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일반부_본선진출작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최유리
처음 이 책을 접하고서 제목으로 인해 첫 페이지를 넘기기에 조금은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경제’라는 분야에 있어 아직은 마냥 어렵게만 느껴졌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제목으로 인한 동감과 호기심으로 그냥 스쳐지나갈 수는 없었다. 그렇게 이 책의 첫 페이지를 열게 되었다.
‘비상식이 상식이 되어버린 이 사회’
맨 처음 이 책을 향해 가졌던 두려움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머리말부터가 내 가슴을 마구 쿵쾅거리게 하였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상식의 사회를 송두리째 전환시켜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흥분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여태껏 생각 속에 갇혀 생각을 하고 있던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면서 조금 더 열린 생각으로 조금은 더 나은 본연의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도 함께 가져본다.
1장의 타이타닉호의 적절한 비유를 보면서, 아니 그보다 다가올 미래를 감지하며 더 많은 사실을 알면서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현실주의자들 가운데 진실로 현실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지금껏 으레 그래왔기에 당연히 현실이 되어버린 비현실의 세계. 상식과 비상식이 뒤바뀌는 순간이다.
실은 이 글을 접하기 전의 나조차도 현실에 수긍하며 아무런 의문점조차 가지지 않았던 게 사실이었다. 경제성장과 환경유지의 반비례 관계 속에 경제성장의 이익을 기대하며, 환경유지의 어려움에 안타까움만 가진 채 이기적인 시각으로 경제성장에만 시선을 고정시켜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다시금 잘못 고정된 시야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정확한 시야로 바로 볼 수 있게끔 도와준 것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이어서 지금 제주도 강정마을에선 해군기지 건설을 두고 해군을 포함한 정부 세력과 마을 주민들 간에 의견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 경찰병력까지 동원된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이미 대화와 타협으로 인한 문제해결을 넘어서 공권력으로 인한 민간인 희생자가 나오진 않을까 몹시 우려되는 현시점이다.
이것이 이 책의 2장에서 말하는 공권력의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대변해주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을 가둘 길이 없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그 권력의 외형만 바뀌어졌을 뿐. 그 내면은 오히려 더 진화되어 가고 있는 이 세태 속에 무엇이 진정 옳고 그른지조차 분별치 못하며, 아니 분별하더라도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되돌아올 뿐이니, 이 만행들을 다 어찌 감내할 수 있을 것인지 가슴이 먹먹해진다. 더 이상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씻을 수 없는 고통대신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의 입장에서 원만한 해결이 이루어지길 바래본다. 더 나아가 그들에게 이 책을 반드시 권해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불현듯 몇 해 전 보았던 영화가 떠오른다. ‘창’이라는 영화인데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떠난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3장에서 다룬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 그동안 우리네에게 알려진 것과 달리 그들이 입장에서는 또 다른 입장인 것처럼, 이 영화에서는 양측의 입장을 모두 볼 수가 있었다. 복음을 전하려는 의도로 그들에게 다가간 선교사들과, 그곳에서 살고 있는 원주민들 사이에선 불안함과 더불어 스스로 살기 위해 선교사들을 필사적으로 죽일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내용을 담고 있는 영화이다. 물론 종교적인 견해는 이것에 견줄 수 없지만, 지금껏 알고 있는, 또한 알아가는 사실로 믿고 있는 것들이 한 쪽만의 일방적인 사실일 수 있다는 사실을 더 이상 간과해서는 안 될 것으로 여겨진다.
나는 어릴 적 바다가 눈앞에 펼쳐지는 시골에서 자라났다. 시간이 날 적마다 고향에 내려가게 되면, 유달리 눈에 띄는 풍경이 있다. 바로 버스에 큼지막하게 적힌 문구이다.
‘발전합시다’
어릴 적엔 막연하게 ‘우리 동네가 발전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참 많이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학교로 인해, 직장으로 인해, 그 정든 고향을 기쁘고 설렌 마음으로 떠나 도시로 와서 살고 있는 지금, 가끔씩 내려가는 고향의 변화된 모습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도시의 삭막함을 떠나 자연그대로의 모습을 즐기기 위해 찾아간 곳이지만 어느새 많은 것들이 너무나도 변해버린 모습에 더 이상의 달라져가는 풍경은 바라지 않게 되었다.
옛말에 ‘옛것은 좋은 것이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 때는 그 소중함을 너무나도 몰랐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서야, 그것이 사라지고 나서야,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음에 그제야 소중함을 느끼게 된 것이다.
요즘도 가끔 고향에 내려가게 되면 언제 또 사라져 버릴지 모르는 모습 하나하나들을 눈으로 담기에 바쁘기만 하다. 발전은 하되, 더 이상의 훼손을 바라지 않던 내 모습이 이 책을 통하여 지극히도 모순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동전의 양면처럼 또한 얻는 쪽이 있다면 반드시 잃는 쪽이 있다는 것을 지극히도 당연한 사실을 어떻게 인지하지 못했는지, 모두가 함께 잘 사는 나라란 희망적인 문구로 그 이면의 현실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감싸고 있었음을 아직도 많은 이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얼마 전까지 나는 프리랜서 작가였다. 남들처럼 똑같이 일어나 버스에 몸을 싣고 회사에 출근하며, 점심시간이 되면 우르르 몰려나와 무얼 먹을까 고민하여 식사를 하고, 다시금 회사로 돌아와 일을 마무리한 후 똑같은 시간에 회사를 나와 다시금 버스에 몸을 싣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상들이 못 견디게 싫었다. 그래서 선택한 일이 프리랜서 작가였다. 허나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기에는 이 세상의 방식에 맞추기가 너무나 힘겨웠다. 가장 기본적인 생활조차 영위하려면 짜 맞춰진 일정한 수레바퀴 속에 내가 들어가야만 하는 것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삶을 살아갈 순 없을까!’ 하는 생각을 20대의 끝자락에 선 얼마 전까지 가장 많이 하였던 것 같다. 그렇다고 나의 비전을 포기한 것은 결단코 아니다. 다시금 삶의 수레바퀴 쪽으로 들어가 있지만, 이젠 그 바퀴를 내가 굴려보고자 한다. 더 나은 내일보다 현재 속에서 비전을 잃지 않고 더 나은 오늘을 즐겨보고자 한다. 제로성장가운데 진정한 인간의 삶을 마음껏 누려보고자 마음을 바꾸어 본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발견한 재밌는 것 중의 또 하나, 선거대신 제비뽑기다.
처음엔 피식 웃음이 났지만, 이것만큼 공평한 것이 어디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권이 주어진다는 것, 아무도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방법, 과히 21세기 진보 속에 고대 그리스의 선거방식이 훨씬 현명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풍요속의 빈곤이라는 말이 제격인 듯싶다.
이제는 이 풍요 속에 빈곤보다 빈곤 속에 풍요로움을 즐기는 변화의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많은 것들이 개발되어지는 한편, 사라져가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고유한 문화가 될 수도 있고, 정말 생활에 불필요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네가 조금 더 현실을 자각하여 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보여주는 시선으로만 아닌, 들리는 소리로만이 아닌, 자각하여 스스로 깨어 변화의 시선을 가지길 기대해 본다. 나 또한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된 수많은 내적 소리들을 삶을 살아가는 외적 원동력으로 변화시켜보길 스스로에게 기대해 본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