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고등부_흰수마자상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경주여고 박하예지


염소 몇 마리가 웅덩이에 고인 물을 홀짝거렸다. 터번을 쓴 노인의 얼굴에 패인 주름살이 한 층 더 깊어졌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백 마리가 넘던 염소는 근래의 가뭄으로 먹이를 구하지 못 해 대다수가 굶어죽었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심한 가뭄이었다. 수 세대를 이어져 내려온 유목 생활의 전통은 이제 자식 세대로 이어지지 못할 것 같다고, 노인은 담담하게말했다.

너른 풀밭 대신 펼쳐진 붉은 흙이 발밑에서 부스러졌다. 얼마 남지 않은, 그나마도 마른 염소 몇 마리를 이끌고 노인은 다시 염소들을 먹일 풀이 있을 어디론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가슴 한 구석이 내려앉은 것 같은 마음으로 텔레비전 화면을 보았다. 지구 북반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유례 없는 가뭄은 환경 파괴로 인한 기후 변화 현상 중 하나다. 거대한 에너지 소비로 환경을 파괴해오고 있는 것은 이른바 선진국 대다수이며, 그 ‘이로움’을 누리고 있는 이들 역시 이른바 선진국 국민일 것이다. 그런데 그로 말미암은 피해는 어째서 그들의 반대편에 서 있는 유목민이 받고 있는 것인가? 비단 유목민 뿐만은 아닐 것이다. 기후 변화를 비롯한 각종 환경 재해는 이미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지기 시작했다. 특히 유목 생활을 하거나 농사를 짓는 등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그 체감 정도가 더할 것이다.

세계는 놀랄 만큼 ‘발전’했고, 각종 언론에서는 ‘인류가 출현한 이래 가장 풍요로운’ 사회라고 말한다. 무엇이 풍요이며 무엇이 발전인가? 단순히 생산량만 놓고 본다면 풍요를 말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각종 첨단 무기로 무장한 국가들의 전쟁은 늘어났고, 핵무기마저 등장했으며, 세계의 절반은 굶주린다. 경제성장의 이름 아래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어가 고 있는 현실은, 경제가 발전하면 모두가 잘 살 수 있다는 말의 허구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성장하면 ‘우리’는 풍요로워진다”는 이데올로기는 이 시대의 현실주의이며 상식이다. 이른바 상식이란 대다수 사람들이 일반적인 지식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다. 하지만 역사를 돌이켜 보면 진짜 상식이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예를 들 어 ‘신분제가 없는 평등 사회’은 구호는 중세에는 헛소리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당연한 전제로 받아들여진다. 상식은 변할 수 있으며 때로 몇 세기 앞서간 ‘진짜 상식’은 무시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말대로 이 책의 상식 역시 시대를 앞서나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에, 이미 위험성을 감지한 많은 사람들이 환경운동을 비롯해 여러 활동을 펼지고 있지만, 세계의 주류는 아니다. 겉으로는 환경을 말하지만 실상은 경제성장을 비롯한 ‘성장’의 화두가 가장 선두에 서 있다. 대다수 사람들의 머릿속에 성장 이외의 것은 모두 ‘비현실주의’라는 생각이 박혀 있는 듯하다. 나 역시 읽으면서 몇 번이나 ‘현실’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특히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군대가 없어야 한다는 주장이 그랬다. 다른 나라가 군대를 가지 고 있고 더군다나 우리 나라 같은 경우는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안보를 위 해서라도 당연히 군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이제까지의 내 상식이었다.

책을 덮고 잠시 생각해 본다. 우리 나라의 역사 속에서만도 몇 번이나 군사 독재와 계엄령이 행해졌고, 그에 대한 저항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바로 국민을 지켜야 할 군대가 자국민을 학살한 것이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근래에 있었던 이집트나 리비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얼핏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군사적으로 가장 강대한 시기와 군대에 의해 죽은 사람이 가장 많은 시기가 일치한다는 점과 역사적 경험으로 돌이켜 봤을 때, 진정한 평화가 무엇으로 이룩되는지를 알 수 있다.

저자의 주장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선거를 제비뽑기로 하자는 것이었다. 저자는 보통의 교 과서의 서론에 ‘고대 그리스에는 직접 민주주의가 있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는 그것이 적합하 지 않다’라고 적혀 있다고 말한다. 그것이 이제껏 학교 사회시간에 배웠던 것과 판에 박은 듯이 똑같아서 좀 웃었다. 대의 민주제의 위기와 같은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사회 교과서와는 거꾸 로 저자는 ‘가장 기본적인 경향을 국민이 바꾸지 못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주장 한다.

나는 이제껏 내가 가졌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떠올렸다. 나는 뉴스나 신문을 보는 것을 좋 아하지 않았다. 특히 신문 일 면에 큼지막하게 박힌 정치판의 이야기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속 끓이며 세상을 욕해봐야 바뀌는 게 하나도 없다. 는 것을 일찍부터 알았다. 정치는 정치가의 것이었다. 나 한 사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벌써 수천년 전의 사람이건만 아리스토텔레스가 현재의 정치 형태와 같은 대의 민주주의를 정확히 보았다고 생각한다. ‘선거를 하면 가장 유명한 사람, 가장 돈이 많은 사람, 가장 사회에서 눈에 뜨이는 사람이 뽑이게 되므로, 그것은 귀족이라는 것이다’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선 거절만 되면 ‘서민의, 서민에 의한, 서민을 위한’ 정치를 외치지만 막상 당선되고 나면 결국 자 기들 뱃속 불리기나 바쁜 이유는 바로 그들이 귀족이기 때문이었다. 국민이 직접 투표를 한다는 점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 후보들이 귀족 뿐이어서야, 또 정치 권력을 잡게 되면 귀족이 되어서 야 그것이 민중이 주인인 정치형태가 될 수 있을까. 차라리 정치나 국가 방향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 편이 건강에 좋다는 냉소주의와 무관심이, 실은 개개인이 전체 구조에 영향을 끼질 수 없다는 무력감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물론 단순히 모든 사람이 제비를 뽑아서 국민의 대표자가 된다는 것은, 중우정지로 흐를 위험 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그대로 현대 정치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 요한 것은 뽑힌 사람이 특권 의식을 가지지 않고, 장기 집권으로 정치가 타락하지 않으며, 민중 의 참여로 대다수의 옳은 의견이 정치에 직접적으로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타이타닉호는 여전히 암초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나가고 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암초에 부 딪혀 수많은 생채기가 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비록 그것이 방사능이 있는 유토피아라 할지라도 늦지 않는다면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경제를 민주화하고 올바른 현실주의로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바로 우리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다. 하나 하나의 힘은 미약하되, 모이고 모여서 전체가 되었을 때는 감히 그것을 무시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아무리 국가나 기업이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결국 그것은 국민들의 지지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학교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커피 한 잔을 들어보이며 말씀한 적이 있다. 이 커피가 다른 일반 회사의 것보다 훨씬 더 비싸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것은 질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 커피 회사가 다른 회사와 달리 어린아이들을 강제 노동시키지 않고 정당한 방법으로 원두를 수확하기 때문에 가격이 조금 비싼 것이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 회사 제품이 조금 비쌀지라도 구매한다고 하셨다.

이런 노력이 미약해보일지라도,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이는 소비자로서 우리 스스로의 장래를 만드는 일에 관여하는 것이다. 참여하는 것이다. 스스로 변화하는 진짜 민주화이다. 그리고 세상은 이러한 노력을 통해 조금씩 변화해간다.

죄근에 일본에서 큰 지진이 일어나 방사능이 유출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 여파로 원자력 발 전소를 더 지어야 한다는 정치권 일각의 주장이 자취를 감주었다. 만약 이같은 사고가 또 일어난다면, 사실 그 때에는 이미 늦은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21세기의 현실주의, 진짜 상식에 대해 다시 한 번 고찰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깊은 사고를 통해 어떤 것이 진짜 발전인가를 알고, 실천적 참여를 통해 냉철한 현실주의자가 되었을 때에만 ‘모두가 풍요로운 유토피아’를 건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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