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의 대한민국: ‘진보’의 가치는 무엇인가?
일반부_꾸구리상
2011년의 대한민국: ‘진보’의 가치는 무엇인가?
더글러스 러미스의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를 읽고
최종연
지난 민주정부 10년 동안 많은 것이 변화하였다고는 하지만, 양극화는 심화되었고 경제성장을 바라는 국민의 의식은 그대로 온존하였다. 그 결과로 민주정부는 “주가 3천”과 “뉴타운”을 외치는 이명박 정부에 정권을 넘겨주게 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이명박 정부 4년차, 한국은 무상급식 주민투표, 반값등록금 집회, 해군기지 반대운동, 희망버스로 대별되는 반 구조조정 반 비정규직 운동이 동시에 공존하는 격변기를 맞고 있다. 이러한 사건들은 사회적 변화의 일환인가 아니면 단순한 개별 사건인가?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의 저자 더글러스 러미스는 위와 같은 한국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유효한 배경지식과 반론의 격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러미스는 근대국가의 폭력 독점, 경제 ‘발전’의 신화성, ‘제로성장’의 ‘대항발전’으로 사고할 것을 차례대로 설명하고 마지막으로 민주주의 본연의 의미로서 경제성장 지속 여부를 선택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현실의 문제는 언젠가 변화의 필요성에 직면하게 됨을 역설한다. 이로써 러미스는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직면하는 박탈감, 빈곤, 무기력의 문제가 실은 정치의 문제로서 시민 개개인이 바꿀 수 있는 문제임을 확인시켜 준다.
실상 현재 한국사회는 모든 면에서 러미스가 제시하는 ‘대항발전’의 논리가 절실하게 요구된 다. 4대강 사업은 치수를 내세우면서도 그 이면에 22조원이란 예산투입이 가져오는 지역경기부흥과 토목공사의 근원적 ‘성취’를 지역민들에게 제시함으로서 무리없이 시작되었다, 4대강에 오가는 중장비들과 서서히 건설되는 거대한 ‘보’는 수도권 중심 경제구조에서 지역에 활기와 돈을 불어넣는 것으로 지지받았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농경지 침수와 앞으로 소요될 막대한 관리・보수비용 뿐이었다. 4대강 사업은 자연을 ‘관리’라는 명목으로 착취하는 과정을 경제발전이란 명목으로 가장 잘 포장된 것에 불과하다.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사업도 목적은 달라보이지만 이면에는 경제발전이 숨어있다는 점에서 본질은 4대강 사업과 동일하다. 단일사업비로 9,770억 원이 투입되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사업은 민군복합관광미항이란 형용모순의 수식어를 달면서 은연중에 제주도민들에게 경제발전과 경기활성화의 환상을 심어주고 그 대가로 일정한 자연의 훼손을 요구하고 있다. 1960~70년대 고도압축성장기를 거쳤으나 개발에서 소외된 지역민들은 이같은 대규모 토목 공사가 가시적이고 웅장한 건축물을 내보임으로써 고무되고, 일정한 효과를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러미스의 지적대로 결국 ‘발전되어’ 풍요가 약속되는 것이 아니라 빈곤해지는 약순환, 제주에서는 해군기지 건설로 인한 농토수용과 인근바다 오염으로 인한 기존 경제활동 장애라는 작쥐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실상 이렇게 경제발전을 신비화함으로써 환경훼손을 정당화하는 문법은 압축성장으로 인해 발생하였고 또한 그 소외지역에서도 재생산되고 있다. ‘변변한 공단 하나 없다는' 전라북도가 필사적으로 매달린 결과 서해바다의 자궁인 새만금 갯벌이 폐토로 변한 새만금 사업을 대법원이 승인하면서부터, 자연수계를 차단하고 수돈물로 돌리는 청계천이 시민들로부터 각광을 받음으로써 러미스의 지적대로 자연에 대한 폭력은 ‘발전’으로 치환되는 문법의 정당성이 유지되었다. 새만금 사업이 위법하지 않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난 때로부터 4대강 사업 또한 예고된 것이다.
동시에 인간에 대한 폭력이 발전으로 전환되는 문법은 비정규직 사용의 만연화와 노동조합 및 소비자 운동의 억압으로 발현되었다. 현대자동자 비정규직들은 동일 라인에서 왼쪽 바퀴를 끼우는 동안 오른쪽 바퀴를 끼우는 정규직에 비해 반값의 월급을 받고, 각 대학 청소노동자들은 최저임금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수백억원의 흑자가 나는 한진중공업이나 콜트악기 같은 회사가 해외에 공장을 차리면서 국내 근로자들을 정리해고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파업을 하는 근로자들은 경비용역의 폭력에 시달리거나 업무방해죄로 기소되어 처벌되는 일이 만연하고 있다.
위와 같은 환경 및 노동문제들이 지난 10년의 민주정부 하에서도 ‘경제발전’이라는 이데올 로기 하에 악의적으로 또는 색깔론적으로 포장되거나 ‘법질서 확립’으로 처단되었음과 동시에 신자유주의 하에서 ‘낙수이론’으로 풍요를 약속하는 주류담론으로 가려져 왔음은 부인될 수 없다. 그러나 서두에서 나열한 투쟁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옴은, 러미스가 설명한 ‘비상식의 상식화’에 이르는 노정이 한국 사회에서도 시작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게 한다. 그러나 러미스의 탁월함은 보드리야르가 지적한 소비사회의 문제점, 수많은 사회민주주의 이론가들이 지적한 경제민주화의 필요성에서 머무르지 않고 국가-경제-환경을 연결시켜 문제점을 설명시켰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제2장을 보자. 제2장에서 러미스는 평화헌법을 무력화하는 PKO법과 신가이드라인을 설명하면서 국가폭력 독점의 위험성을 역설하고 있다. 이와 같은 논의는 일견 한국의 현실과 동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상 북한을 마주하는 징병제 국가로서 4.3사건과 5.18 광주 민주화항쟁의 ‘민살’을 경험한 한국에서 러미스의 지적은 더욱 유효하다. 특히 제주 해군기지 갈등은 자국민에게 국토수호와 수로안전확보라는 명분으로 군 기지가 강요되면서 일상적인 대치와 폭력이 일어난다는 점에서 러미스가 제2장에서 지적한 자국민에게의 국가폭력 사용을 보여주는 예이다. 제주 해군기지는 충돌축이 명확하지만 한국민의 집회와 시위에서 상시 부딪치는 전투경찰 및 의무경찰 또한 군대의 기능을 후방에서 담당하는 조직으로서 국가폭력이 정당하다는 신화의 반례가 되고 있다.
환경 또한 마찬가지다. 러미스는 맑스가 타이타닉의 하부구조로서 기계실을 보는 한계를 지적하면서 진정한 하부구조는 타이타닉이 떠 있는 바닷물 자체라고 말한다. 그의 설명대로 현대 경제는 아무리 금융경제가 발전하였다 하더라도 실물경제에 기반하여 있고 금융경제 또한 실물경제의 가변성과 상호작용하고 있다. 한정된 수출 품목과 재벌이 이끄는 제조업 경제를 중심으로 성장하면서 농수산업을 홀대한 한국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 경제는 매년 국제 농산물 및 원유 등 원자재 가격에 직격탄을 받고 있고, 앞으로도 자유무역협정 확대로 인해 생활이 기반하고 있는 농수산물 자급자족 기반이 흔들림과 동시에 환경보전 실패로 인한 종다양성 부족을 뒤늦게 절감할 것이다.
경제성장 담론을 중심으로 강고하게 결합한 토건세력과 재벌 행정부와 이에 영향받는 사법부를 보면 변화는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러미스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역설한다. 현실적인 하부구조인 환경 그 자체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특성을 인식하고, 경제성장이 선택의 문제라는 인식의 전환을 통해 정치적 잠여를 활성화하면 분명히 비상식이 상식이 된다는 것이다. 러미스의 지적을 자분하게 받아들인다면 현재의 한국사회는 인식을 전환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은 분명하다. 한국 경제발전의 신화적 아이콘인 삼성전자에서 원인물질을 숨긴 백혈병 등으로 수십 명의 근로자들이 사망한 사실은 경제 발전이 분명한 대가를 요구하며, 선택으로서 그 희생을 줄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이 화두가 된 뒤 181개 지자체에서 초등학교 전면 무상급식을 시행하고 있음은 국민의 선택이 현실을 바꿀 수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8월 24일 시행될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등에서 보편적 복지가 퍼주기 포퓰리즘으로 매도당하는 현실은 아직 한국사회에서 변화가 현재진행중이며 그 변화는 강고하게 지속되기에는 위태롭다는 것을 보여준다.
변화가 강고하게 지속되기 위해서는 현재 위에서 지적된 개별이슈들이 러미스의 지적대로 국가경재환경을 한 축으로 이해하는 시각을 통해 묶어지고, 본질적으로 환경을 기반으로 한 선택의 문제라는 점을 국민들이 인식해야 한다. 그에 대해 러미스가 제시한 ‘대항발전’이라는 방향 또는 그것이 가능하게 될 기반인 ‘보편적 복지’로의 방향전환을 진보의 가치의 삼고 소위 진보대통합 또는 정책연대를 실현해야 한다. 또한 그 밑거름으로써 지난 민주정부 10년이 위와 같은 방향전환을 확실하게 인지하지 못하였음을 반성하고 향후 동일한 경제・노동・환경정잭이 되풀이되지 않음을 국민들 앞에 약속해야 한다. 러미스의 책은 진보가 분열된 가치가 아니고, 환경을 기반으로 인간의 능력을 발전시키는 바탕에서 사고되어야 할 가치임을 조용하게 엮어내는 소중한 기반이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