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우리는 진정한 행복 속에서 살고 있을까?
고등부_얼룩새코미꾸리상
과연 우리는 진정한 행복 속에서 살고 있을까?
광신고 최동규
내가 읽은 책의 제목은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다. 보통 사람들이 이 책을 접하기 전에, 제목만 보고 내용을 판단했다면 경제성장에 대해 반(反)하는 하나의 테마를 가진 내용일 것이라고 추측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용은 그것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테마를 이야기 하고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여러 내용 중 ‘제로성장을 환영한다.’ (목차에서 제 4장에 해당하는 내용)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싶다. 이 파트가 나에게는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경제성장이 지구를 파괴하는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임을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따른 연구도 이미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나오고 있다. 무자비한 개발 덕에 여러 국가는 경제성장을 했다고 본다. 하지만 자연의 유한성으로 인하여 경제성장은 곧 한계에 이르렀고, 이젠 그만 멈춰야 한다고 말한다. 허나 정작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잘 되지 않고 있다. 어째서일까? 두려움. 바로 경쟁사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경제성장을 멈추게 되면 국가의 차원에서는 가난한 나라가 될 것이고, 개인의 차원에서는 당장에 먹고 살일, 자녀의 등록금, 기타 생활비 등등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두려움은 안전구조가 약한 경쟁사회의 원동력이다. 결국 이 공포가 사회를 움직인다는 것이다. 슬픈 현실이다. 공생하는 사회가 되면 이 두려움의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념은 쉽사리 바꾸기 힘들다. 경제성장에 대한 각자의 공통된 관념과 미래에 대한 불안함 역시 단기간에 바꾸기는 힘들 것이다. 조급히 결과를 얻으려 하는 기대를 갖는 것 보다 사태를 천천히 장기적으로 주시하면서 서서히 이것, 곧 슬픈 사회의 연결고리를 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영국의 신경제재단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는 ‘바누아투’라고 발표 했다. 물론 이 국가를 들어본 사람이 있겠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GDP 순위로만 보자면 전 세계 233개 나라 가운데 207위인 빈곤국. 땅도 좁은 나라. 그럼에도 어떻게 바누아투가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가 된 것일까? 그들은 물질적 풍요가 아닌 자연을 섬기고 소중히 여기는 의식, 사람들 사이의 정이 선진국에 비해 높게 발달 되어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물질적 풍요가 가득하면 사람들은 행복해진다’는 명제가 거짓임을 증명할 수 있다. 경제 성장이 잘 된 나라일수록 무관심, 우울증, 폭력 등등 사회적 문제가 빈번히 발생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고도로 경제 성장이 된 국가는 물질적 풍요만 넘쳐날 뿐, 인정과 같은 사람들 사이의 정이 그렇지 못한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없기 때문이다. 매번 오락기계와 같은 기계에 의존해서 혼자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발달 되어있다. 기계에 의존하지 않으면 즐길 수 없게 된다. 즉, 마음속의 진정한 즐거움이 없어지게 되므로 위와 같은 사회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경제성장을 멈춘다는 것은 행복을 실현하는 행위로 봐야한다. 진정한 즐거움을 통해 얻는 행복이야 말로 기계에 의존해야만 즐길 수 있는 행복 보다 몇 십 배 혹은 몇 백 배 이상의 가치가 있고, 훨씬 더 즐거울 것이다.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발전시키자는 것이 경제성장을 멈추자는 것의 궁극적 의도이다.
세계는 너무나도 과잉 발달이 되어 있다. 그로인해 피해를 보는 국가도 적지 않다. 과잉 발전에 따른 사회적 문제 역시 나날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결국 인류의 낙원인 지구는 점점 파괴되고, 인간의 창조력은 갈수록 저하되고, 최소한에 대해 만족할 줄 모른다. 인간은 경제 성장만이 풍요를 가져다준다는 큰 착각 속에서 자신들의 무한한 욕망 때문에 모든 것이 서서히 파멸하고 있는 중이다. ‘과유불급 -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 우리는 지금 과유불급의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실로 심각한 상황이다. 더 이상의 문제를 야기하기 전에 우리는 상식의 전환을 꾀하여야 한다. 경제 발전만이 풍요를 가져다준다는 구(舊)시대적 발상(發想)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경제 성장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하기 보다는 공생사회와 자연을 사랑하는 자세를 통해, 마음의 풍요를 찾는 것이 나는 인류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혹자(或者)는 내 의견에 반박을 할 수 있다. “그런 식으로 하기에는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기에는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인류의 문화 발전을 시키기 힘들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빨리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말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서서히 변화시키는 것만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문화는 100% 기계에 의해서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 스스로 심적 여유가 생길 때, 특히 기계에 의존하지 마음속의 풍요를 찾을 때 비로소 아름다운 문화가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무한한 욕심과 경쟁을 멈추고 주변을 보면 미처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세계를 볼 수 있다. 우리는 지구라는 타이타닉 호 에 승선하고 있다. 지금 이 배는 멸망이라는 거대한 빙산을 향해 가고 있다. 멈추지 않고 계속 가면 곧 빙산에 부딪히게 된다. 멸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늦어서 후회하기 전에 욕심과 경쟁이라는 타이타닉 호의 동력인 욕심과 경쟁, 과도한 성장을 멈추고 진정한 즐거움을 찾아 나서자. 그것이 우리의 후손이, 곧 전 인류가 진정한 행복의 삶을 누리게 될 수 있는 ‘모범 답안’ 이다. 유한한 자연환경 속에서 인류의 진정한 행복을 가로막는 무한한 경제성장을 추구한다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 이제는 자연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이 말을 가슴 깊이 새겨 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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