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달의 눈은 무엇을 바라나

고등부_얼룩새코미꾸리상

수달의 눈은 무엇을 바라나

경인고 김판중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비는 내가 사는 곳을 폭격하고 있다. 최근에서야 무지막지한 강우의 무서움을 절실히 느낀다. 폭우가 한 번 내리쏟더니 마을과 산이 조토화된다. 어디로 이동해야 할 때는 거리에 비례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며, 큰 공사 작은 공사 모두 차질을 빛는다. 뿐만 아니라 식자재가 희귀해져 물가는 물가대로 폭등한다. 곧 명절이 임박해오는데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있었던 일본 대지진과 원자력 발전소 붕괴를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보았건만 그에 버금가는 피해를 우리 눈앞에서 겪고 있다. 다만 전자와 후자가 차이가 조금 있다면, 전자는 정말 어쩔 수 없는 지구의 변덕에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후자는 지구의 이유 있는 분노일 가능성이 높다.

지구의 분노는 갈수록 격해진다. 지구온난화는 지구의 분노 표출 방식의 한 가지이고, 다른 온갖 방법의 분노가 우리를 옥죄고 있다. 인간이 지구에게 갖가지 방식으로 괴롭힌 것저럼. 그러나 아직도 서구 문물을 받아들인 동양권을 비롯한 서구인은 지구의 분노를 무시하고 있다. 저탄소 성장은 말뿐이고, 가차없이 공장을 여기저기서 가동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환경 살리기를 빙자한 큰 공사를 여기저기서 하고 있다. 환경운동도 하고 있지만 소수이기에 역부족이다.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 뭔가가 파격적인 혁명이 필요한 것을 어느 정도 느끼고 있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있었지만, 더글러스 러미스만큼 진부하지만 파격적인 의견을 본 것은 처음이다. 내가 더글러스 러미스의 책을 읽게 된 것은 학교 게시판에 게재된 게시물을 보면서 읽게 되었다. 물에 젖은 수달의 눈이 너무도 처연하다. 마지 우리 사정을 알아줘달라는 것저럼. 사진사가 이 훌륭한 장면을 과연 의도하고 찍었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책을 읽게 된 동기가 수달이었음은 틀림없다. 때문에 게시물을 읽었다. 내용이 어떠했는지도 몰랐지만 책 제목은 정말 진부하기 짝이 없었다.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라니……. 책 이름 외우기도 어려웠다. 논문 제목도 저렇게는 안 쓸 것 같았다. 하지만 책에서는 얼마 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던 소유나 분배의 문제에도 관여하고 있다는 느낌이 물씬 났다. 몇 번의 고민 끝에 결국 구입하고 책을 읽게 되었다.

제목에서도 암시하듯이 저자는 경제성장이 환경오염의 주범이라고 보았다. 자본주의가 뒷받침이 된 경제성장이 끊임없이 생산자와 소비자를 만들어 착취를 하게 된다. 이는 개개인은 물론 국가도 마찬가지로 상대적인 빈부, 자본과 기술의 차이를 규정하여 손때 묻히지 않은 자연까지 개발하게 한다는 것이다. 타당해 보였다. 그러한 예는 역사 속에서는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접해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존의 눈물]에서도 다뤄진 적이 있었다. 아마존의 여러 부족은 서구인이 유입되기 전까지 그들의 방식만으로도 충분히 잘 살 아갔다. 하지만 서구인이 남아메리카로 들어오면서 그들의 문화를 접하게 되었고, 이제는 그 들이 파는 총과 옷, 의약품이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한 부족은 점자 그들의 고향을 등지고 서구인과 동화되었다. 서구인이 된 그들이 서구화된 국가에서 뭘 할까? 그들이 살았던 고향을 자르고 불태우게 되는 것이다. 경제성장을 위한 발전이 소리 없는 폭력이었다는 작가의 말이 심히 공감된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요즘 유행하는 스마트 폰이 있다. 사실 휴대전화나 스마트 폰 이전에도 먹고 사는데 큰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한 명 두 명 휴대전화를 사용하게 되었고, 이제는 없으면 불편한 유용한 기기가 되었다. 그러나 달리 보면 우리는 01 작은 휴대기기에 예속되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기계에 구속당하고 싶지 않다고 전화를 만들지 않았다고도 한다. 전화나 문자에 답이 없으면 상대방이 화가 나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저럼 우리조자 발전으로 인한 기술에 의해 예속이 되고 그것의 소비자가 되어 왔다.

따라서 작가는 발전으로 계속 운행되는 타이타닉을 멈주자고 한다. 곧 경제발전을 그만두자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발전 대신 대항발전이라는 대안을 냈다. 내가 대항발전을 확실히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저자가 만들어낸 말로 조금은 정돈이 되지 않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경제지향적 발전을 버리고 그에 대항하는 이른바 줄이는 발전이라는데 감이 잘 잡히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이 조금만 더 유명했더라면 대항발전이라는 단어는 온갖 이슈를 일으키면서 널리 알려질 것이었다고 확신할 수 있다. 잘은 몰라도 대항발전은 우리가 분명 원하던 것이다.

고작 환경 때문에 우리가 추구해온 경제발전을 버려야 하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대항발전은 환경을 위해서만이 아니다. 우리는 늘 괴롭다. 경쟁 속에서 인재가 되기 위해서 기를 쓰고 공부한다. 사실 인재라는 말 자체가 사람을 도구 취급하는 것이지만,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계속 인재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해왔다. 그렇게 해서 조금 더 높은 위치에서 돈을 더 벌고 더 떵떵거리면서 살려고 하지만 사실 그렇게 하면서 많은 친구들을 가난하게 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말하는 경쟁사회는 그런 약육강식의 폭력논리를 내포하는 것이다.

이런 대항발전에 호감을 갖게 되었지만, 경제발전이 전부인 줄 알았던 나로서는 획기적이면서 위험스러운 발상이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했다. 기술을 버리자는 말은 이 문명을 버리고 과거로 돌아가자는 말이 아닌가라고. 하지만 저자는 그러한 질문에 대해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것은 또 다른 진보이며 진보를 그저 뜬구름 같은 이상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이전까지 있어왔던 모든 혁명은 모든 사람이 더 나은 방향으로 살아가기 위한 진보에서 출발되었다고 말이다. 그러므로 겁 먹을 필요가 없다고 나도 믿게 되었다. 경제성장을 버리는 것도 우리 몫이지만 그 후 지향해야 할 방법을 모색하는 방법도 우리이다. 옛 조상들도 해 온 일인데 우리라고 못할게 뭐가 있을까?

게다가 이미 방안도 제시된 바 있다. 책에서도 주장한 바 있듯이, 복지야말로 경제성장에 대항하는 대항발전의 주제가 될 것이다. 혹자는 그런 말도 한다. 파이가 작은데 어떻게 그것을 나눠서 먹을 수 있냐고. 파이가 커야 나눠먹을 것이 커지지 않겠냐고. 그러나 학교에서 본 한 다큐멘터리가 꼭 그렇지 않다고 입증했다. 쿠바는 오래 전부터 사회주의를 표방한 국가이다. 사회주의 국가, 그리고 남아메리카 국가는 기술도 열등하고 가난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쿠바는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곳의 의료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세계에서 제일 잘 산다는 미국조차 쿠바의 의료 기술을 못 따라간다고 한다. 그 이유는 애초에 의료 서비스의 접근성이 상당히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이웃 국가의 환자들을 치료해주고 또 원정 치료를 나가는 의사들은 환자들을 많이 접해보기 때문에 의료수준이 당연히 좋아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선례가 많지 않더라도, 희망이 존재한다. 복지 국가는 잘 가동할 수 있고, 또 성공적이다. 문제는 우리가 얼마만큼 복지국가에 대해 개방적이냐일 것이다.

인간이 누군가의 부품이 되어 일하는 것은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물론 그게 쉽지는 않다. 여전히 돈 많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위협하고 또 그 위협에 우리는 너무 약하다. 그러나 책에 의하면 계속 그렇게 살아갈 수는 없다. 사회는 물론이고, 자연 환경마저 그렇게 살지 말라고 우리의 등을 떠밀고 있다. 지금도 누군가의 계획에 의해 삶의 터전을 잃고 있는 사람과 동물이 너무나도 많다. 과연 우리나라가 4대강을 정비한답시고 강바닥을 파고, 제주도를 지킨답시고 항만기지를 지어서 모두 잘 사는 국가를 만들 수 있을까? 그러한 사업으로 질적인 문제는 물론 양적인 문제마저 충족시킬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진보적인 자세라고 했다. 그것이 터무니없이 이상적인 방법이라 해도. 대부분의 발명품과 생활양식은 불가능한 상황 혹은 생각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직면한 환경문제와 분배문제 또한 불가능에서 시작하여 가능의 마침표를 찍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의심이 된다면 내가 읽었던 책을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책 뒷면에는 이 책을 읽어야 할 사람의 유형을 적혀있다. 아마 이 유형에 들지 않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책은 언제라도 읽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언제든지 우리에게 열려 있다. 꼭 읽고 인재가 아닌 인간다운 인간이 되려고 노력했으면 좋겠다. 우리 인간을 위해서, 우리 생태계를 위해서. 수달의 눈도 그걸 바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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