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한 모금: 경제 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일반부_본선진출작

물 한 모금

경제 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조용연


올여름 장마는 유난했다. 그것을 장마라고 해야 할지 재앙이라고 해야 할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 그래서 휴가 내내 집에 틀어박혀 그동안 쌓아 놓고만 있던 책을 읽는 게 고작이었다. 그래도 우울하지 않았다. 인터넷이나 TV 뉴스를 통해 본 수재민들 생각 때문이었다. 폭우는 엄정났고, 그 강수량 때문에 수재민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여기저기서 탄성 아닌 탄성도 터져 나왔다. 그럴 만도 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고단함 속에 예상지 못한 이변을 당했으니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기사를 접할 때마다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이 앞섰다. 비를 내리게 해달라고 기우제를 지낸 것도 아닌데 숙연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나는 더글라스 러미스의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를 집어 들었다.

정말로 나의 책임은 없었을까?

머릿속으로 그런 질문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전문가들은 이번 폭우의 원인을 ‘온난화 현 상’에서 찾고 있었다. 모두의 예상대로였다. 이 세상의 모든 생물을 이롭게 하기 위한 땅과 하늘이 이토록 변하게 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인간의 이기심 때문이었다. 나의 사소한 습관 하나하나가 이 세상을 병들게 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뿐인 것이다. 나름대로 ‘환경보호주의자’라고 자칭하고 있었지만 나 또한 말뿐이었던 것이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집 가까운 곳에 ‘안골’이라는 이름의 깨끗한 계곡이 있다. 무더웠던 작년 여름에는 두 세 번은 다녀왔을 정도로 안락하고 쾌적한 계곡이었다. 지난 주말 나는 가족들과 함께 그곳을 또 찾았다. 작년과 다를 게 없었다. 고작 1년만이었으니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폭우로 인하여 바닥이 깊이 파였고, 여기저기 뿌리를 드러낸 나무들이 많았다. 저대로 방치한다면 적어도 몇 그루의 나무들이 계곡으로 풍덩 빠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결국 작년과는 풍경이 달라진 것이었다. 분명 달랐다. 나의 아름다운 기억 속의 안골 계곡은 어디에도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가까운 곳에서 피서를 온 가족 단위의 피서객들이 몇몇 더 있었다. 잠깐 잠깐 얘기를 나눠보면 비가 너무 많이 내려 작년과는 다르다는 말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작지만 강한 나라 대한민국에는 산지도 많고 그에 따른 계곡과 강도 많다. 게다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으니 폭우에 대한 피해는 엄청날 것이다. 인간이란 결국 자연재해 앞에서 무방비 상태로 놓인 작은 존재에 불과했다. 그런 쓸쓸한 생각을 하면서 계곡물에 발을 담갔다. 물은 시원했다. 머리끝까지 오싹할 정도로 시원하고 상쾌한 기분이었다. 물론 작년보다 물이 맑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자연과 함께 있을 때, 인간은 가장 행복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속에서 노니는 몇몇 물고기들을 보았고, 그 물고기들을 따라다니는 아이들을 보면서 즐거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는 작은 도롱뇽도 보았던 생각이 들었다. 물이 얕고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가보아도 도롱뇽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많던 도롱뇽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뿔뿔이 흩어진 행적들은 다시 모으는 것은 불가능할까?

작년 즈음부터 나의 주요 관심사는 ‘4대강 사업’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대제 왜 그런 사업을 펼치려는지 그들의 속내야 뻔했고, 그 속내를 뻔히 알면서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야마는 우리의 자연이 속상하고 분했다. 인간이란 너무나도 뻔뻔하고 이기적인 존재이다. 단지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가장 가까운 길을 선택하려고 든다. 조금만 돌아가면 화합의 길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아니나 다를까 4대강 사업은 시작부터 삐거덕 댔다. 누가 봐도 잘못된 선택이었던 것이다. 말로는 자연을 위한 경제 발전이라지만, 그것은 분명 자연을 죽이는 조건으로 경제적 이득을 취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국민은 위한 것이 아닌, 그 몇몇을 위한 특권의식으로. 벌써 수많은 물고기 떼와 철새 떼가 피해를 입었다. 이것은 분명 죄악이다. 죄를 지은 자는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죄를 지은 자들은 떳떳하게 4대강 사업을 추진할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대체 얼마만큼의 상처를 안아야 다시 살아갈 수 있을까?

어렸을 적 도롱뇽 알을 채집해서 내 방의 수족관에 넣어둔 적이 있었다. 그때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다시 놓아주는 게 좋겠어. 도롱뇽이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 생각해봐.” 어렸지만 나는 그 말뜻을 곰곰이 헤아렸다. 그래, 그랬다. 도롱뇽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이 내 방의 작은 수족관은 아니었던 것이다. 도롱뇽의 알은 곧 유생이 되었고, 나는 다시 시냇물이 흐르는 곳으로 가 열 마리 남짓한 유생들을 풀어주었다. 앞으로 얼마만큼 오래 살고 얼마만큼 행복할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작은 수족관에 갇혀 있는 것보다는 더 나을 것이란 결론 때문이었다. 금붕어를 사다가 수족관에 키우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때는 나름대로 진지하게 생각했지만, 지금은 명쾌하게 답을 낼 수 있다. 자연의 것은 자연 그대로인 것이 가장 아름답고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4대강의 모습도 원래의 그것대로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마치 경제 성장이 안 되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가난이 곧 찾아올 것처럼 말하는 이들이 있다. 국민 모두를 생각하는 그들의 과거는 어떠했던가. 그들에 대한 불신의 벽이 더 높아만 갔다.

물 한 모금 마실 수 있는 날이 다시 올까?

아이였을 때, 그 시절에는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싶을 때 마실 수 있는 곳이 얼마든지 많았다. 지금저럼 물을 마시려면 그만큼의 돈을 지불해야 했던 시대는 아니었던 것이다. 돈을 물주고 사먹다니. 상식 밖의 일이었고, 이런 세상이 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요즘 백화점을 가보면 생수 매장이 따로 있다. 종류도 그렇고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어떤 물은 알래스카 빙하수를 담아왔고 어떤 물은 스위스의 맑은 호수 물을 정화했다고 한다. 바다 건너 온 수입산 물에 그토록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나는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단순한 호기심이라면 이해하겠다. 하지만 지금 이 세상이 탐하는 것은 깨끗하고 몸에 좋은 물이다. 바야흐로 웰빙 시대니까. 정말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화려한 금수강산을 옆에 두고 왜 그 비싼 돈을 지불하고 물을 찾으려는 것일까. 4대강 사업을 추진하는 것만 막는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얼마든지 깨끗하고 몸에 좋은 물을 마음껏 맛볼 수 있을 텐데. 작년에는 분명 안골 계곡에서 물 한 모금을 떠 마셨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깨끗하고 정갈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다. 여기저기 흙탕물이었고 다른 이들도 따로 생수를 가져와 마시고 있었다. 그런 풍경을 보고 있자니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인가, 하고 한숨이 나왔다.

물고기는 사라지고 새들은 울고 있다.

이번 장마로 인하여 4대강 산업의 피해는 극으로 치달을 것 같다. 내 예상일뿐이지만 이미 인터넷 뉴스에는 4대강 산업에 대한 피해로 기사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이 아름다운 자연을 망친 첫값을 어떻게 다 치르려는 속셈일까. 게다가 진행 중이던 사업지들이 무너져 내려 그에 대한 예산 피해는 상상을 넘어선다. 그들이 주장했던 경제적 이익마저 수포로 돌아간 순간이다. 그렇지 않아도 폭우로 인한 피해가 심각했던 그동안 진행했던 공사마저 도로 아미타불이 되었으니 이제 그들은 어떤 변명거리를 만들고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4대강 사업의 피해를 내 피부에 와 닿는 것처럼 느끼지 못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4대강 사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국민 모두가 수렴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가 원하면 그 소망대로 전 우주가 움직인다는 말처럼 말이다.

그래도 나는 믿고 싶다.

우리의 역사는 슬프고 잠담했다. 지키고 싶었던 것을 끝내 놓치고야마는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꼭 지켜내고 싶다. 자연은 한 번 놓치면 다시 되돌리기 쉽지 않다.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는 것이다. 더글라스 러미스의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오직 경제 성장만이 우리를 풍요롭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꼭 행복만을 가져다주는 것도 아닌 것이다. 어쩌면 행복이란 사랑하는 이에게 물 한 모금을 건네주는 것이 아닐는지. 언젠가 아이였을 때의 친구들을 만난다면 맑고 깨끗한 물 한 모금을 건네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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