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를 읽고
일반부_꾸구리상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를 읽고
아주대학교 환경공학과 한호원
요즈음 환경이 세계의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진환경 제품, 지속 가능한 성장, 탄소배즐권 거레 지구온난화, 와 같은 검색어가 포털 사이트에서 높은 빈도로 검색되며 세계 여러 도시에서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회의가 개죄되고 있다. 나는 환경 공학을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공학도적인 접근으로는 환경오염이 얼마든지 발생하던, 공학적 기술을 통해서 다시 정화시키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기본으로 전공을 선택하고 공부해 오고 있다. 우리가 배우는 폐수저리 기술과, 진환경 제품 설계 이러한 기술들은 환경오염적 요소를 줄이는 것을 가르치고 있으며, 이러한 기술들이 적절히 사용되기만 한다면, 이론적으로는 환경오염을 대부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중요한 것은 소비 자체를 줄이는 것이 더욱더 중요한 일이라는 것, 또한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중분히 소비 형태를 개선할 수 있으며 현재 우리는 지나지게 과소비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인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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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커졌지만 가족은 더 적어졌다
더편리해 졌지만 시간은 더 없다.
학력은 높아졌지만 상식은 부족하고
지식은 많아졌지만 판단력은 모자라다
전문가들은 늘어났지만 문제는 더 많아졌고
약은 많아졌지만 건강은 더 나빠졌다
…- 우리시대의 역설(The paradox of our time), 제프딕슨
위의 글은 제프딕슨이라는 사람이 지은 우리시대의 역설 이라는 시 중의 일부이다. 이 시가 의미하는 바와 이 책의 저자인 더글러스 스미스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는 같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현재 분명히 지난 시간보다 더 많은 편의와 기술을 제공받고 있지만 그 이전보다 더욱 피곤해 지고, 근무시간은 날이 갈수록 길어지며, 여가를 즐기며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어 가고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초과 근무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다 이는 비단 직장인들에게만 적용되는 개념은 아닐 것이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직장인은 물론이고 학생, 은퇴한 노년층에 걸져서까지 지나친 경쟁으로 인하여 필요치 않은 부분에서까지 최선을 다하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이는 시간 및 자원의 낭비에 불과하며 그 작업들이 인류의 삶의 질 개선에 공헌하는 바는 시간에 비하여 매우 미미하다. 아니 오히려 선진국으로 갈수록 국민들의 행복지수는 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삶의 질을 포기하면서까지 경제성장과, 과도한 업무에 대한 압박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일까? 책에 나오는 타이타닉호저럼 우리는 아마 빙산을 향해서, 파멸을 향해서 열심히 엔진을 가동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경제성장을 이야기 한다. 성장 아니면 죽음 이런식의 논리이다. 이것은 ‘잘 살아 보자’는 새마을 운동의 이데올로기였고, 기업가 줄신 경제 대통령을 선출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성장과 발전은 무조건적으로 좋은 것이고, 사람들의 생활에 보탬이 되는 것으로 인식한다. 그런데 과연 경제 성장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높아지는 국민 소득과 총생산은 무엇을 제시하는 것일까? 경제 성장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지구 전체로 보았을 때의 자원량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지구 전체의 자원은 생산되는 속도에 비해서 월등히 소비되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유한한 자원을 계속적으로 소비하면서 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곧 자원의 총량은 계속 줄어들기만 한다.
경제에서 말하는 국가 총생산 이라는 것은 아마 경제에서 이야기하는 ‘사용가치를 갖는 재화 또는 상품’의 양이 늘어나는 것일 것이다. 문제는 그 상품이라는 물건이 진정으로 사용 가치를 갖느냐다. 모든 기업에서는 잉여생산된 상품을 광고산업을 통하여 팔아치움으로써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한다. 이 ‘잉여생산’은 말 그대로 필요한 것 이상으로 생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실제 세상에서 돌고 있는 제품의 양은 항상 소비자가 필요한 제품의 수량 이상이다. 필요하지 않은 상품은 폐기물에 불과하므로, 우리는 계속적으로 자원을 폐기물로 바꾸는 일에 동참하고 있으며, 그것도 아주 열심히 하고 있다. 쓸데없는 일을 하느라 인생의 너무 많은 시간, 세상의 너무 많은 자원을 소비하고 있다.
내 생각엔 이것이 경제성장의 본질이다. 그저 쓸데없는 허상을 잡기 위하여, 너무 많은 시간, 너무 많은 자원을 소비하고 있으며, 소비되는 가치에는 행복이라는 정량적으로 산정하기 힘든 정신적 가치 또한 포함되어 있다.
행복이 경제성장을 통해 줄어드는 예는 우리나라에서도 아주 잘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는 ‘잘살아보세’라는 슬로건으로 시작한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지난 몇십년 간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말 그대로 1970년대에는 우리나라가 이정도로 ‘잘살게’ 될 줄은 꿈 도 못 꾸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국민들의 행복 지수는 어떠한가? OECD 회원국의 행복지수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3년째 꼴찌를 달리고 있다. 청소년들이 소비하는 재화 맞 상품의 가치는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던 때에 비해서 엄정나게 증가했는데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행복지수는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았을 때 나는 경제성장이 행복이라는 가치를 먹고 자라는 괴물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 몇 가지 부연설명을 붙이자면, 몇몇 워커홀릭들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은 행복을 일에서 보다는 여가시간에 즐기는 취미에서 찾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므로 여가 시간이 보장될수록 우리는 행복을 찾을 가능 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경제가 성장한다고 해서 우리의 경제 활동이 유연해지고, 근무 시간이 줄어든다고 할 수 있을까? Slack (2010, Tom DeMarco) 이라는 책에서 이야기하듯이 경제가 불황이건, 호황이건 근로자가 요구받는 바는 ‘열심히 일할 것!’이다. 그러므로 경제가 성장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행복을 찾을 가능성이 높아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경제가 성장하면 규모가 커진 경제에 대하여 수반되는 여러 가지 작업들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일할 것을 강요받게 되고, 사람들이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게 된다.
요즈음 우리를 보면 아주 잘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제는 매우 성장했으나, 근무시간은 전혀 줄지 않았고 오히려 초과근무시간만이 더욱더 증가 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밤 11시에 퇴근해 아침 7시에 출근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경쟁사를 이기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문화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돈은 많이 받지만 행복하지는 않다. 통장에 잔고는 쌓여갈지 몰라도 마음에는 항상 공허함만이 존재한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꿈과 희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은 점점 더 험해져만 가고, 미담은 텔레비전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희미해졌다. 내 생각에는 현재 우리 사회의 문제들이 지난 40 년간 경제 성장에 대한 지나진 집착으로 인하여 나타나게 된 현상이라고 생각하며, 지금이라도 우리는 인생에서 추구해야 할 가치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국가적 제도가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일본의 예를 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예를 들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영어회화를 필수적인 것으로 생각하며, 백인 외국인들에 대해서는 매우 관대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 등, 대부분의 상황이 우리나라와 매우 비슷하였다. 우리 대학생들은 이 문제들은 개선해 나가야할 책임을 가지고 있는 세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황금만능주의가 만연한지는 이미 오랜 시간이 흘렀다. 요즈음 대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취업의 요소는 일의 보람, 자신의 적성보다는 연봉이 최우선이다. 그래서 몇십년째 수학능력시험에서 고득점을 한 뛰어난 학생들은 고소득을 보장해주는 의대, 한의대, 법대 등으로 몰리고 있다. 수능 고득점자들 중 대부분이 의사, 변호사가 직업적 적성과 일치하여 의대, 법대에 진학하는 것일까? 아마도 대부분의 학생들이 안정적으로 고수익을 보장 받을 수 있는 직업을 선호하다 보니 생기는 현상일 것이다.
책에서 이야기 하고 있듯이 우리는 이 흐름을 멈춰야만 한다. 돈은 삶을 아름답게 만들지 못한다. 황금만능주의가 심해질수록 사회는 험해진다. 황금만능주의 하에서는 돈되는것 아니면 사람들은 관심을 주지 않고, 돈되는 일이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해가 되는 일이라도 기꺼이 할 수 있다. 게다가 돈이라는 것은 인간의 허구가 만들어낸 상품 교환의 수단이다. 그러므로 허구에 존재하는 돈은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다. 요즘같이 전자거래가 일상화 되어있는 시대에는 더욱더 쉽다. 그러나 자원은 어떠한가, 자원의 존재는 실제적이다. 또, 인간의 욕심으로 그 양을 한없이 늘리기도 불가능하다.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내 생각엔 시간이 지날수록 세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화폐의 규모와 자원의 규모 사이에는 점점 더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이는 자연스레 해결될 수도 있는데, 화폐규모가 계속 커져서 더 이상 경제 발전이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것을 대중 대부분이 인식하기 시작한다면, 경제 발전의 환상은 자연스레 깨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가게 되어, 화폐경제 규모가 급격히 커짐으로 인해서 자원을 이용한 상품 생산량만을 눌려버린다면, 자원은 고갈되고 남는 잉여 상품은 그 판매곤란으로 인하여, 국제분쟁 발발의 위험이 내포되어 있다.
이것은 정치적인 관점에서 판단하였을 때 나올 수 있는 문제점들이고, 내면적인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문제는 달라진다. 경제 발전 논리는 지금까지는 상당히 오랜기간 동안 효과적으로 인류를 진보시켜 왔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1900년대 조반만 하더라도 인류 대부분이 배고픔이 일상적이었으며,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싶은 욕구가 강했기 때문이다. 그 때는 복지체계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하루하루의 삶이 생명유지의 불확실성을 상당히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다르다 특히, 인류의 진보를 이끌어 나가는 선진국의 경우에는 더 이상 경제발전이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근원이 되지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풍족하고, 일상생활에서 불편한 것이 없을 정도의 편의를 제공받고 있고, 일을 하지 않아도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복지를 제공받고 있다. 돈은 더 이상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지 못한다. 돈을 위해서 고된 자기발전의 길을 견디지 않는다. 돈을 좋아하는 반면에, 돈만을 위해 일하는 것은 경멸한다. 경제발전만을 추구해서는 우리는 더이상 기술의 진보는 이루어내기가 힘들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명하게 맹목적으로 경제발전만을 추구하는 타이타닉호의 엔진을 멈추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생의 본질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것으로 충분히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충분한 교육을 통해서 우리의 인생은 무엇이고, 우리가 삶에 있어서 진정으로 중요하며, 추구해야 될 가치는 무엇인가를 성찰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자주 제공한다면, 인류는 분명하게 이 경제발전이라는 강력했던 이데올로기를 놓고 마음속 깊이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람의 본성에는 분명히 무엇이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인지를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존재 하므로 조금만 도와준다면, 세상은 분명이 좀 더 살만한 세상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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