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일반부_본선진출작
이소연
나는 사회의 현실문제에 방관적이었다. 어차피 내 일이 아니지 않은가, 지금 내 코가 석잔데 누굴 돕고, 무엇을 변화시킬 수 있단 말인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지, 라며 고개를 돌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내 눈 앞에 있는 일들과 손에 쥐어진 문제들을 해결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등을 돌린 것도 있었고, 괜한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 미룬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괜한 실패나 무력감같은 것을 느끼고 싶지 않기도 했었다.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민주주의라고 말하는 곳에 살고 있지만 사실 그것은 모순된 점이 많고, 자유와 경쟁, 능력에 의해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것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알려준다. 이제까지 이유를 알 수 없었던 현실의 모순들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이 책은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가끔 옛날 사람들의 생활방식이나 전통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많았다. 그러나 간편하게 소비하는 경제생활에 익숙해져 버린 나로서는 이곳을 벗어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소비와 생산, 그 외의 가치에 대해서는 전혀 인정되지 않는 사회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해서 훌적 떠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요즘은 농촌이라 할지라도 구석구석 경제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주의 경제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해서 가능한 일일까? 가끔 텔레비전을 통해 산 속에서 혼자사는 노인들을 볼 수 있었다. 누더기 천막을 짓고,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자연속에서 먹거리를 얻고, 사람들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것이다. 그들은 사회에서 상처받고 소외당한 후 미련없이 사회에서 떠나 홀로 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자유롭게 살아가지만 결코 자유롭지 못한 혼자만의 삶을 택하느냐, 세상과 타협한채 무감각하게 노예로 살아가느냐, 우리 앞에는 결코 행복하지 못한 두 갈래 길이 있을 뿐이다.
경쟁사회 속에서 낙오되면 도움을 받기가 힘들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살아간다. 자의든 타의든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자신의 힘으로 빠져나올 수 밖에 없고, 한번 쓰러지면 다시 일어날 수 없는 사회구조 속에서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내가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선뜻 도와주지 못하고 손에 쥐고만 있게 된다. 경제의 흐름에는 변수가 많고, 돈의 흐름은 무서운 속도로 흐른다. 금방 사라져버리고 일시적으로 변하는 것이 돈이라는 것이지만 사람을 더욱 조심스럽고 소심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돈이란 것의 특성이다.
우리는 물건을 살 때, 단순히 그 물건의 기능이나 디자인, 편리함 때문에 사는 것만이 아니다. 다른 이들이 갖고 있는 것을 내가 가졌다는 것에 대한 쾌감을 느끼고, 과시하기 위헤 물건을 구입하기도 한다. 그 과시를 봐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견제하고 자신보다 더 잘나간다고 생각하면 시기하고 질투한다. 돈이 많은 사람이건 적은 사람이건, ‘과시’라는 것은 삶의 아주 중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과도한 소비를 하지 않으면 과시를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필요한 것만 갖고 사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돈이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끊임없이 우리는 광고에 현혹되고, 값비싼 명품과 전자제품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어떤 방법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 돈을 벌었는가,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도 일종의 과시가 되어버렸고, 진정한 의미의 도움같은 것은 사라지고, 우리 자신 또한 미래에 대한 확실한 보험을 들어놓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우리 주변에는 일중독인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것은 돈에서 시작되기도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결과를 얻었을 때 자신의 존재이유를 얻기도 하는 것이다. 시간은 금이다,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들어오는 말이다. 이 말은 곧 시간 자체가 자원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교육은 인간을 깨어있는 시간 모두를 일하는데 쏟아 붓게 하고, 그렇지 않은 시간은 쓸모없는 시간, 가치없는 시간으로 치부된다. 우리는 휴식을 하면서도 죄책감을 느껴야만 하는 것이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짜투리 시간을 만들고, 그 구체적인 계획에 자신을 묶어놓는다. 기술의 진보는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는 시간을 점점 줄어들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술은 끝이 없고, 그것으로 인해 인간의 시간은 컴퓨터와 금속, 빠른 정보로 가득 채워진다. 시간 자체도 우리는 돈으로 환산하고 우리의 삶자체가 계산되고 있는 것이다.
도심은 블록, 도로, 주차장, 상가건물, 빌딩으로 뒤덮여있다. 이 세상은 소비, 서비스, 생산품으로 뒤덮여있고, 그 교환은 오로지 돈으로밖에 가능하지 않다. 숲을 없애고, 커피나 고무, 플랜테이션을 만든 것과 무엇이 다를까. 우리는 이곳의 노동자가 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간접적인 강제노동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아래에서 능력과 선택이라는 기회를 통해 자율적으로, 자발적으로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식민지 사람들과 똑같이 어쩔 수 없는 사회환경 속에서 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욕구, 문화, 사고를 포기한 채 그저 시키는 일에 대해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스트레스는 받으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모두가 풍족하게 사는 것도 아니다. 부유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고, 오히려 열심히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 귀족적인 부와 명예를 누리는 경우가 많다. 모두들 돈에 대해 고민한다. 그리고 돈을 버는 과정에서의 스트레스를 관리하지 못하고, 주체하지 못해 사회문제가 생겨나고, 사건사고가 일어난다. 정치인들과 경영인들은 그들만의 세계를 넓혀가고 있고, 힘 없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그 세계에 눌려 점점 시간도 돈을 제 뜻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스트레스와 불행 속에서 무기력함을 느끼며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난 왜 이것밖에 못하는 인간일까?’ ‘왜 이렇게 사는 건 힘든 걸까?’ 자신을 탓하고, 체념하고 포기해버린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성공한 인사들을 보며 더욱 자신을 책망한다.
우리 사회는 이 사회에 도움이 되느냐, 이 국가에 도움이 되느냐에 따라 인간의 가치가 판단되어버린다. 우리는 사회와 국가를 위한 도구, 수단이 되는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목적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남보다 더 공헌하기 위해 도움이 되기 위해 우리는 그것만을 보고 눈을 가린 달려가는 말이 된다. 그리고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면 우리는 갈채를 받게 된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 피해를 보거나 짓밟힌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피해를 본 사람의 몫일 뿐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남들이 어떻게 되든간에 신경쓰지 않고 빠르게 달려가기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더더욱 난폭한 말이 되어간다. 욕망에 눈이 가려진 달리는 인간이 된 것이다.
그것은 세계로 확대해도 마찬가지이다. 나라들은 서로 순위를 매기고, 선진국과 후진국으로 나눈다.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부유해지기 위해, 다른 나라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 나라들끼리 경쟁을 한다. 서로를 돕는다는 것은 나중에 도움을 받기 위한 보험에 가깝고, 같이 손을 잡고 발전하자는 동업의 의미와도 같은 것이다. 진정한 도움, 휴머니즘은 없다.
아시아나 아프리카 사람들이 굶어죽어가면 우리는 말한다. 우리 나라에도 못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다른 나라 사람을 왜 도와주냐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우리는 우리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세금내는 것조차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우리는 톱니바퀴처럼 물려있는 경제활동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 수밖에 없다. 누군가 경제적으로 풍요를 입다고 어딘가에서는 더 어려워지고 굶어죽어가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좀더 넓은 시각과 사고로 이 세계를 바라봐야 하고, 우리가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할 것 정도는 인식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누구의 이익인가, 누구의 손해인가를 따지게 된다면 우리는 결코 조화롭게 살아갈 수가 없다. 일본에 해일과 지진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상관없는 일처럼 생각했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방사능물질은 바다를 통해 이 지구를 돌고 있으며, 대기중으로 확산되어 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국의 지구, 일본의 지구, 아프리카의 지구, 미국의 지구, 인도의 지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결국 하나라는 것을 인식해야 하고, 우리의 이웃들과 남이 아닌 같이 사는 공동체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왜 유명인사들이 말하는 것, 선진국이 말하는 것이 진짜라고 믿고 있는 것인가.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의 방식인 것은 틀림없으나 그로인해 전쟁이 일어나고, 세계는 난폭해지고, 갓난아이들까지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지구는 이상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이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명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그런 움직임에 대해서 눈에 띄게 드러나진 않았지만 이제는 그런 휴우증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그 사실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고, 불안을 느끼고 있다. 자신들의 편의와 부유를 위해 행했던 것들의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런 부작용이 없었다면 그들을 원망하거나 비판할 이유를 찾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그들의 영리한 머리와 계산으로 인해 우리는 이제 부정적인 세계관을 갖고 살아갈 수 밖에 없게 되었고, 그것을 복귀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에너지, 힘이 필요하다. 그것을 복귀시킬 의욕도 동기도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너무나 절대적인 믿음으로 경제발전 이념을 받아들였고, 그것이 전부라고 교육받아왔다. 그것에서 벗어날 저항력같은 것도 갖고 있지 않다. 온실 속에서 자라난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온실 밖으로 뛰쳐나올 화초들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이며, 그런다고 해서 그 화초들이 무엇을 할 수 있고,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우리들은 온실 속에 있더라도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그 밖에서는 누군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 온실의 입구에서라도 저항력을 점차적으로 기르고 서서히 바깥으로 나올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급진적으로 뭔가를 변화시켜야 한다, 바꿔야 한다 이런 것은 어쩔 수 없이 이상론이 될 수 밖에 없다. 단시간 안에 회복되거나 변화되기는 힘들다. 짧은 시간 속에서 인위적으로 한다는 것 자체가 나중에 분명 부작용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우리 주변, 사회는 대부분 확고한 자본주의 사고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을 바꿔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중심을 갖고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넓은 시야로 세계의 돌아가는 흐름과 역사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세상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우리가 서로에 대해 이해하고 그 사이를 좁혀나가는 것이 더 필요하다. 급작스러운 변화는 대결구도를 만들고, 기득권의 반발을 초래하며, 약자는 더욱 무기력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 상황 속에서 점진적인 변화와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고, 개인의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외적인, 물질적인 풍요가 아니라 내적인 평화, 인간으로서의 존재감 그 자체에 중심을 두고, 우리가 그것을 더욱 소중히 여길 수 있도록 시간을 두고 바꿔나가야 하는 것이다. 모두를 위해서, 결국 나와 이웃, 가족을 위해서.
책에서는 기계나 기술에 의지하지 않고 즐거움을 느끼는 능력, 기쁘게 지낼 수 있는 능력을 키우자고 말한다. 이것을 다른 말로 ‘참다운 의미의 행복주의’라고 하는데 소비에 따른 행복주의가 아니라 참다운 뜻의 행복주의, 인간 내면적인 것, 우리 자신으로 눈을 돌리는 것을 말한다. 무감각해지고 점점 묻혀져 가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돌아볼 시점인 것이다.
잘못이 있으면 고치는 것이 당연하고, 내가 생각하는 의견이 있으면 표현할 자유가 있다. 동시에 세상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과연 내가 발언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내가 잘 모르고 던지는 말이 아닐까, 또 내가 모르는 사이 피해를 받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라는 신중함도 필요하다. 현실을 제대로 보기 위한 눈을 키워야 할 것이다. 세상은 생각보다 복잡하게 얽혀있고, 우리가 모르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바쁘고 귀찮고 불편하기 싫다며 무관심한 태도를 갖는 것보다는 귀를 열고 눈을 열어 보다 소통이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연봉, 사회적 지위, 명예, 돈과 연결시켜 생각하지 않고, 선호하지 않는 직업일지라도 연봉이 낮더라도 소신껏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의 분위기, 생각의 다양성, 유연성을 키우고 물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이며 감성이라는 것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물건은 그리 많지 않다. 불필요한 것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수많은 것들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지 한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무한의 즐거움과 행복은 돈과 생산, 소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에 있는 것이다. 부작용도 휴우증도 없는 아름다운 행복, 아름다운 자연과 인간이 함께 웃을 수 있는 행복을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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