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쌓기’를 하지 않은 방학을 후회하며: 무한 경쟁, 4대강 사업 그 너머의 ‘경제 성장’ 중독을 비판하다

일반부_본선진출작

‘스펙 쌓기’를 하지 않은 방학을 후회하며

무한 경쟁, 4대강 사업 그 너머의 ‘경제 성장’ 중독을 비판하다

서울대학교 사회교육계열 김시은


이번 여름 방학은, 학부 1학년생으로써 처음 맞는 방학이었다. 고등학교 3년과 재수 1년을 거치며, 입시의 압박을 4년이나 겪어왔기에 이번 여름방학은 수험생처럼 지내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부모님이나 친구들 혹은 지인들에게서 이런 이야기들을 들었다. “영어 회화 학원 다녀야지?”, “책 읽고 여행 다니는 것도 좋은데 자격증이나 스펙 쌓는 건 안하니?”, “요즘 얼마나 취직하기가 힘든데 대학 1학년부터 준비해야 안 늦어!” 등등 사실 입시를 4년 동안 치루고 처음 맞는 방학에, 한없이 자유를 누리고 싶었기에 애써 이런 ‘충고’들을 무시하며 마음에 내키는 대로 또 원하는 대로 방학을 보냈다. 그러나 2학기 개강이 보름정도 남은 시기가 되자 마음 한편에서 걱정과 불안이 싹트기 시작했다. “애들 분명히 영어 회화나 어학 성적 올려놨을 텐데 걔네한테 밀리면 어떡하지?”, “자격증이나 준비해둘걸 한 달 반 동안 뭐했지?” 등의 생각이 머릿속을 채우고 말았다. 그리고 왜 소위 ‘스펙 쌓기’에 방학을 ‘유용’하게 보내지 않았을지 반성하며 겨울 방학은 열심히 ‘자기 계발’을 하겠노라고 또 ‘스펙’을 쌓겠노라고 다짐했다.

한편 근래에 들어 점점 날씨는 예측할 수 없는 것이 되어간다. 비만 오면 “기상 관측 이래의 최고치”라는 수식어가 당연하다는 듯이 따라붙는다. 이번 여름도 예외는 아니었다. 집중 호우가 계속되었고 여름에 오히려 맑게 햇빛 비추는 날이 적을 지경이다. 이 와중에 들리는 소식이 있었다. 4대강 사업 현장에서 집중 호우로 인해 설치한 시설물들이 무너지거나 파괴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자연의 섭리를 거부하고 인간에 의해 지어진 시설물들이 자연의 힘 앞에 무너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애초에 천리를 거스르는 일에 막대한 세금을 사용했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 뿐이다. 하지만 4대강 사업은 ‘일자리 창출’, ‘강 유역 지역 경제의 부흥’, ‘이후 관광자원으로 활용되어 경제적 이익 창출’이라는 말들로 애써 합리화되어왔다. 그리고 그런 말들에 국민들은 ‘아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되겠구나. 그럼 어느 정도의 환경 파괴는 어쩔 수 없지’ 이렇게 생각하고 만다.

위의 사고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정상’적인 것 일 것이다. 소위 일류대에 입학한 학생이라고 해도 무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든 시간을 ‘자기 계발’과 ‘스펙 쌓기’에 몰두해 야한다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고 해도 밥벌이도 하지 못한 채 사회의 낙오자가 될 것이라고. 사실 이런 사고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스스로 ‘사회의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더 나아가 최고의 ‘인재’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하고, 노력해야만 한다고 판단했고 또 그런 이야기들이 ‘상식’이었다. 또한 ‘경제 성장을 위해 어느 정도의 환경 파괴는 감내해야 한다’라는 사고 역시 정상적인 것일 것이다. 무엇이든 금전적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으면 다른 부분에서 문제가 있어도 감내해야 한다는 생각. 그러나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를 읽으면서, 개강을 보름 앞두고 한 생각들이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뛰어난 ‘인재’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며, 최고의 ‘인재’가 되기 위해선 방학에도 숨 돌릴 틈도 없이 학원을 찾아다니며 ‘스펙’을 쌓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또한 ‘경제에 도움이 된다면 멀쩡한 큰 강들에 시멘트를 쏟아 부어도 되는가?’에 대한 답도 찾을 수 있었다.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자연과 환경이라는 가치도 ‘성장과 발전’을 위해 희생시켜도 되는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경제성장이…』라는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상식’에 도전하는 책이다. 모두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여겨, 그래서 상식이 되어버린 것들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그것들이 왜 상식이 되어선 안 되는지, 무엇이 문제이고 더 나아가 어떻게 해야 현재의 비상식을 미래의 상식으로 바꿀 수 있는지까지 서술하고 있는 책이다. 특히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감탄하였던 부분은 제3장과 제4장이었다. ‘경제 발전’, ‘경제 성장’에 대해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세계의 현실일 수도 있지만)을 정확히 꼬집고 있는 부분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발전’ 특히 ‘경제 발전’이 국시(國是)였던 것으로 보인다. 민주적 정통성을 가진 정부를 전복시킨 군인들이 내세운 자신들의 ‘혁명’의 명분은 “경제 발전을 통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국민들을 잘 살게 만들겠다”이었다. 즉, 헌법에 명시된, 대한민국의 기본인 민주주의를 포기해서라도 성취해야 하는 것은 결국 경제 발전이란 것이다. 이 사고 아래서 대한민국의 현대사가 진행되었고 현재도 마찬가지이다. 수많은 시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고,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빼앗고, 각종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환경 파괴를 당연시 했던 군사 정권을 과연 국민들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왜 아직도 경제발전이 한국의 국시인지 알 수 있다. 아직도 많은 국민들이 군사 정권에 대해 “그들이 한국 경제 발전을 이룩했으니 그들의 과오는 이해해야한다”, “군사정권의 공(功)과 과(過)를 균형 있게 사고해야지 과만 보려고 하면 안 된다”, “경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선 그 정도 희생은 감수했어야 했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생각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하다. 경제 발전은 인간의 생명이나 권리를 희생해서라도 이뤄야하는 가치라는 뜻이다.

군사 정권에 대한 인식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이 얼마나 집단적으로 경제 성장에 대해 중독되어있는지는 현재 상황에서도 잘 알 수 있다. 현 정권이 대통령 선거 이전에 제기된 여러 도덕적 문제점들을 딛고 대권을 거머쥘 수 있었던 것도 ‘엄청난 경제 발전을 이뤄 모두가 잘 살게 만들어 주겠다’는 공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공약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논쟁을 차치하고 생각해볼 것은 국민들이 얼마나 경제 성장, 경제 발전이라는 것을 중시하고 우선시 하는가에 대한 점이다. ‘도덕성보다 중요한건 경제 성장이다’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져야한다고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도덕성보다 ‘GDP를 몇 퍼센트 올릴 수 있는가’ 그리고 ‘수출을 얼마나 늘릴 수 있고 일자리는 얼마나 만들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에게 제일 기본적인 것은 경제 성장이라는 것이다.

이런 한국과 내가 ‘스펙’을 쌓지 않아 불안한 것이 어떻게 연결이 될 수 있을까. 그 연결 고리는 찾기 어렵지 않아 보인다. 그동안 경제 성장을 말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해왔다. “분배 중요합니다. 나눠 가져야죠. 하지만 아직 전체 경제 규모가 작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급하게 국민들에게 성장의 과실을 나눠줬다간 기업들이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복지를 확대하는 것도 어불성설입니다. 복지에 세금을 투입할 만큼 우리나라가 그렇게 발전된 나라가 아닙니다. 지금은 파이를 나눠 먹는 것보다도 파이의 절대량을 키워야 합니다.” 파이를 먼저 키워야한다는 이 논리는 삼척동자도 알 만큼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들어왔던 논리다. 하지만 그동안 이 논리에 자의 반 타의 반 수긍해왔다. 대기업에 집중된 사회적 경제적 부를 분배하라는 요구는 그동안 소위 ‘빨갱이’논리로 매도당했다. 한편 복지를 확대하라는 주장은 ‘아직은 시기상조’에서 이제는 ‘포퓰리즘’으로 몰릴 뿐이다. 그렇게 한국 사회는 분배나 복지에 지나칠 정도로 무관심할 것을 요구받는다.

이 와중에 국민들은 삶의 질을 생각하기 이전에 새로운 의미의 생존을 걱정해야하는 상황에 저해있다. 한국은 IMF 경제 위기 직후 신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드렸다. 그 결과 신자유주의에서 유일신으로 숭배하는 경쟁과 그 이상의 무한 경쟁은 한국인의 일생에서 피핥 수 없는 상대가 되었다. 무한 경쟁은 유아기부터 청장년기까지 피할 수 없다. 아동일 때는 영어 조기 교육에, 청소년기엔 명문대 입시에, 청년기엔 ‘좋은’ 직장(일반적으로는 대기업이나 재벌 기업일 것이다), 높은 연봉과 취직에, 장년기엔 다시 자녀 사교육에 전력투구하여야만 한다. 영어와 명문대와 ‘좋은’ 직장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전 국민이 알고 있다. 그것들은 타인들보다 편안하고 안정적으로 살 수 있게 해주고 또 사회적 계층 상승까지 이룰 수 있게 해주는 수단들인 것이다. 왜 모두들 그러한 수단들을 원하는가. 단지 개인적 명성과 부를 이루기 위한 것인가. 그럴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한국인들이 그러한 ‘수단’을 얻기 위해 무한 경쟁을 하는 이유는 그러한 수단 없이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현재의 한국은 절대 다수의 국민이 당장 내일의 끼니를 걱정해야하는 상황은 이미 지났다. 이제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인간다운 삶’, ‘삶의 질 향상’인 것이다. 하지만 ‘인간다운 삶’은 국가도 기업도 보장해주지 않으려하는 것이 현재 한국사회의 모습이다. 모두 개인이 담당해야 할 일일 뿐이다. 인간다운 삶은 분배의 확대, 복지의 확장에서 가능한 일이다. 분배의 확대, 복지의 확장은 기업과 국가가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기업과 국가는 여전히 경제 성장을 위해선 희생이 따른다고 윽박지를 뿐이다. ‘경제 성장이 우선해야한다’는 논리에 세뇌 아닌 세뇌를 당한 국민들도 기업과 국가의 논리에 대항하지 못한다. 그저 각자 무한경쟁에서 승리하여 더 뛰어난 ‘인재’로 인정받음으로써 기업과 국가의 시혜 대상으로 ‘선택’되길 바랄 뿐이다. 더 뛰어난 ‘인재’가 되는 방법은 하나다. 바로 남들보다 독특한 자격증, 능력, 경험을 만들어내 ‘스펙’을 쌓는 것. 결국 스펙 쌓기를 하라고 충고했던 분들이나 스스로 스펙을 못 쌓아서 불안해했던 것은 모두 ‘인재’가 되어야만 한다는 판단이 투영된 것이었다.(물론 현재 한국 사회의 모든 문제를 ‘경제 성장 제일주의’ 논리 때문이라고 는 말할 수 없겠지만, 여러 사회 문제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한국 사회는 변화의 길목에 서있다. 무상 급식 문제와 반값 등록금 시위에서 알 수 있듯 국민들은 현재의 무한경쟁체제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국민들은 더 이상 국가와 기업이 해야 될 일들을 하지 않는 일에 인내심을 발휘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뛰어난 ‘인재’ 즉 저비용 고효율의 생산 수단이 되기 위해 국민들이 치러야하는 희생이 이미 감내할 상황을 지났기에 더 이상 무한경쟁체제는 유지되기 어렵다. 하지만 무한경쟁체제가 붕괴하여도 경제 성장, 경제 발전을 제 1의 가치로 상정하는 현재의 사고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한, 국민들은 또 다른 형태의 ‘무한 경쟁’을 해야 하고, 어떤 학부 1학년생은 또 다른 ‘스펙’을 위해 발버둥 쳐야 할 것이다. 경제 성장이라는 가치를 위해 또 다른 가치를 희생하여야 하는 상황 자체가 바뀌어야하는 것이다. 결국 국민들이 현재 당면한 변화의 상황에서 단순히 무한 경쟁만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발전과 성장’이라는 마약도 거부하려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4대강 사업도 마찬가지다. 경제 성장을 제 1의 가치로 상정하는 이상 “경제를 살리기 위해 환경을 파괴하겠다”는 4대강 사업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제 경제 성장이 최고의 가치이고 모든 것에 우선해야한다는 미몽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만 “경제 성장보다 중요한 건 한 마리의 수달이고 한 뿌리의 단양쑥부쟁이다!”라고 외칠 수 있을 것이다. 인류가 그동안 환경 파괴를 통해 물질적 풍요와 경제 성장을 달성해 왔는데 이젠 더 이상 지속 할 수 없다는 건 분명하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이지, 자연의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기에. 이번 여름 한국을 강타한 집중호우도 경제 성장 중독에서 벗어나 절멸의 위기에 처한 자연을 둘러보라는 하늘의 ‘경고’일 것이다.

여름방학에 받은 주변에서의 ‘충고’와 ‘스펙 쌓기’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불안감과 초조함 그리고 이번 여름의 집중 호우에서 시작된 글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방대해졌다. 대학에서의 독후감이 처음이고, 아직 아는 것이 부족해 글을 써낼 능력은 없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글을 쓰면서 드는 생각은 분명하다. “스펙 쌓기를 하라는 충고나, 스펙을 못 쌓았다고 느끼는 불안감은 모두 잘못된 것이다. 또한 4대강 사업을 경제에 도움이 되니 담양 쑥부쟁이 정도는 포기해도 된다는 생각 역시 잘못된 것이다. 이들 문제의 뿌리는 단순히 삶의 질, 물질적 풍요 문제가 아닌 궁극적으로는 경제 성장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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