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라는 거대한 이름에 나의 작은 행동을 더하여

고등부_얼룩새코미꾸리상

역사라는 거대한 이름에 나의 작은 행동을 더하여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를 읽고

청산고 박아람


평소에 ‘경제성장’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무의식적으로 귀를 쫑긋 세우는 나는 이 책의 겉표지를 보자마자 지체하지 않고 단숨에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늘날 우리에게 경제성장은 상식이자 절대적 가치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때문에 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저자는 우리에게 참 바보같은 질문을 던져주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한번쯤 숨을 고르고, 이 바보같은 질문을 고쳐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경제성장만 되면 우리는 풍요로워질 것인가?’

저자는 이 책에서 “상식이라는 것은 불변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크게 변화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강조한다. 즉 결코 변할 수 없는 그 무엇도 바뀔 수 있으며,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상식이란 것이 실제로는 상식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조건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 전쟁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 이러한 “현실주의”가 실은 가공할 정도로 “비현실적”임을 지적한다.

나는 상식이 바뀌는 것은 물론 쉽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한번쯤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고작 10년 전의 상식이 얼마만큼 유지되고 있는가를 말이다. 쉽진 않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본다. 어차피 지금 이 “상식의 세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충분이 힘들어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 페이지부터 나의 눈길을 사로잡는 예사롭지 않은 글귀가 한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지금 타이타닉의 현실주의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다.” 라는 시작.

세상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려가는 타이타닉 호를 경제발전체제에 비유한 부분이 나를 사로잡아 버린 것이다. 먼 미래인지 가까운 미래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언젠가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반드시 일어난다고 하니 기대해볼 만하다.

눈에 불을 켜고 읽어 내려갈수록 모든 것이 내가 미처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것이 나오니까 점점 더 흥미로워지기 시작했다. 그저 저자가 성장만을 추구하는 일본 경제, 그리고 세계 경제에 대해 비판을 하고 있는 이 책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글쓴이의 글을 이해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타이타닉 호”를 이해해야 했다. 이 책에서 제 1장이 "타이타닉 현실주의“인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지구 타이타닉 호에 승선한 전 세계인들은 이 배가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한 배에 탔다. 전진하지 않으면 큰일이 나는 줄 알고 무조건 전진하기만 한다. 하지만, 그 배는 점점 빙산에 가까워지고 있다.

마치 물 흐르는 듯이 전개되는 내용은 내가 책을 덮지 못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그동안 맹목적으로 충성해온 신자유주의와 이념이라는 갈등 속에서 스스로 세상을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한 실체를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시야를 넓히고 진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냉철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제발전 모습을 보면 이러하다. 경제는 성장하고 있으며 국민소득은 높아지고 있는데 그 부의 분배는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일부 대기업과 일부 권력층만이 부를 독점하고, 반대로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의 진행으로 서민중산층은 오히려 더 힘들어지고 있다. 앞으로 극복하지 못할 신분사회가 더 고착화된다면, 오히려 경제성장은 대부분의 서민중산층에게 부정적인 것들만 양산할 뿐이다. 대부분의 서민중산층은 신분상승을 바라며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으려도 더욱 더 자신을 경쟁의 바다로 몰아넣을 것이다. 그 경쟁사회를 지탱하는 건 두려움이고, 열심히 쉬지 않고 일하지 않으면 가난뱅이가 될지 모른다. 언제 뒤쳐져서 낙오할지 모른다는 공포... 상부상조의 사회를 실현하고, 그 어떤 이도 빠짐없이 서로 뒤를 돌보아주는 그런 진정한 의미의 안전이 보장된 사회라고 한다면, 그 두려움은 크게 줄어들 것이고, 그런 두려움이 줄어든다면 건전한 제로성장의 사회는 가능해지며, 그런 사회를 추구하는 과정을 잠정적으로 저자는 “대항발전”이라고 부른다. 줄이는 발전이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을 말한다. 각자가 경제활동에 쓰는 시간을 줄여서 가격이 붙은 것을 줄이는 것이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나라의 사례를 인용해 본다.

유한킴벌리라는 회사는 경제와 회사가 힘든 시기에 직원을 해고해서 인건비를 줄이기보다 직원들을 고용을 유지한 상태로 업무량을 줄이고, 남는 시간은 교육과 자기계발의 기회를 제공했다. 직원들의 급여는 줄어들었지만, 훨씬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대항발전의 두 번째 의미는 경제 이외의 것을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경제 이외의 가치, 경제활동 이외의 인간활동, 시장 이외의 즐거움, 행동, 문화, 그런 것들을 반전시킨다는 것이다. 경제용어로 바꿔 말하면 교환가치가 높은 것을 줄이고 사용가치가 높은 것을 늘리는 과정이라고 한다.

경제발전은 빈부의 차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빈곤을 이익이 나는 형태로 고쳐 만드는 “빈곤의 합리화”이다. 빈부의 차이는 경체활동으로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빈부의 차이를 고치려 한다면 정치활동, 즉 의논하고 정책을 결정하여 그것을 없앨 수 있는 사회나 경제구조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파이가 커지면 조각도 커진다는 논리가 거짓이라고 하는 것은 최근에 많은 서민들이 느끼고 있지 않은가? 물질의 풍요보다는 마음의 풍요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받는 돈이 줄어들더라도, 자기 자신을 얻을 수 있다면 그쪽을 선택하겠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고 싶다는 사람이 점점 더 많아져야 한다. 지금보다도 적게 받더라도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자유시간을 더 갖고 싶다는 의견이 강해져야 한다.

각각의 문제에 대한 “상식”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사고방식이 정말은 현실에서 유리된 것이며, 21세기에 살아남고 싶다면, 우리가 실제로 직면하고 있는 현실에 부합하는 사고방식을 상식으로 삼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진보, 보수라는 정치적 입장에 관계없이 “경제성장”은 아직도 대다수 지식인들에게는 사회진화의 자명한 전제이다. 생존의 자연적 기반이 사라져가고 있는 마당에, 무엇보다 생물학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어떻게 이 현실을 무시하고 살아남을 수 있단 말인가.

역사라는 거대한 이름 앞에 한 개인은 너무나 초라하지만 그래도 나의 작은 행동 하나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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