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도상국, 사마리아인이 치운 사다리를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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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도상국, 사마리아인이 치운 사다리를 찾아라

장하준, 『나쁜 사마리아인들』

서울대학교 인류지리학과 채준석


현재의 세계경제는 신자유주의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로 인해 최근 그 세력이 다소 위축되기는 했지만, 신자유주의는 여전히 여러 나라들에게 시장 개방을 요구하고 자 유로운 기업 활동을 허용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세계경제를 국제통화기금, 세계무역기구, 세계은행이 좌지우지하고 있고 그 뒤에는 개도국에 돈을 빌려줄 권리를 가진 선진국이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을 개발도상국들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이렇게 국제기구를 통해 선진국들은 신자유주의를 설파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저자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는 이런 선진국들의 일련의 행동을 “사다리를 치우는 나쁜 사마리아인의 행동”으로 규정한다.

1980년대 국가의 개입을 강조하는 케인즈주의의 폐단을 지적하며 등장한 신자유주의는 영국의 마가렛 대처 수상(대처리즘)과 미국의 로날드 레이건 대통령(레이거노믹스)의 감세정책 등의 정부의 비중을 줄이고 민간비중을 높이는 경제정책을 통하여 정책화되었다. 신자유주의 정책에는 공기업의 민영화, 시장개방을 통한 자유무역, 지적재산권의 확대를 통한 기술개발의 장려 등을 들 수 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지난 30여 년간 세계의 경제 관련 요직 을 차지하고 이러한 정책들을 세계로 확산시키기 워해 노력하였다. 이들은 자유 시장을 통한 경쟁으로 세계 경제가 발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프리드먼은 『렉서스와 올리브』에서 세계화시대에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황금 구속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이다. 물론 ‘황금 구속복’은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의미한다. 그는 이 누구에게나 맞는 신기한 ‘황금 구속복’을 착용함으로써 어떤 나라든지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고 경제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있다.

이런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해 장하준 교수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사다리 걷어차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과연 현재의 경제 선진국들이 ‘황금 구속복’을 작용해서 경제발전 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일까? 안타깝게도 『나쁜 사마리아인들』에 제시된 역사적 자료들을 보면 신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왜곡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측면에서 선진국들의 경제 발전사를 살펴보면, 자유무역의 전도사로 일컬어지는 영국과 미국마저도 경제 발전기에는 관세를 높게 설정하여 자국 산업을 키우는 강한 보호무역정책을 추진한 바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국은 원래 저지대국(네덜란드, 벨기에 지역)에 양모를 공급하는 농업 국가에 불과하였지만 저지대국의 선진 기술자를 초빙하고 양모 수출과 모직물 수입을 철저히 통제한 후에서야 모직물을 발달시킬 수 있었고 이것이 바탕이 되어 산업화에 성공하여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이 될 수 있었다. 미국의 경우에도 초기에는 유럽의 공산품을 사고 농산품을 유럽에 공급하는 역할에 머물러 있었지만, 자유무역을 주장하는 유럽의 유수의 경제학자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과감하게 추진한 보호무역 정책과 유치산업 육성을 통해 공업을 발전시키고 나서야 영국을 제치고 세계 제일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선진국들은 ‘황금 구속복’을 입어 경제발전을 한 것이 결코 아니고 오히려 ‘황금 구속복’을 벗었기 때문에 현재 선진국의 대열에 올라있는 것이다. 장하준 교수가 지적하듯, 프리드먼의 책 제목 『렉서스와 올리브』의 렉서스 자동차마저도 일본의 보호무역이 아니었다면 나올 수 없었던 자동차라는 것은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이 얼마나 아이러니인지를 잘 드러낸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를 장악한 신자유주의자들은 개발도상국들이 경제위기에 처할 때면 돈을 단순히 빌려주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본시장의 개방, 은행부채비율의 조정 등 경제정책의 수정을 권고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자들이 단순히 이론을 통해 자신들의 이론을 개발도상국들에게 권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진 돈을 토대로 강요하고 있는 셈인 것이다. 장하준 교수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이러한 모습을 자신들은 보호무역과 정부주도의 산업육성을 통한 경제발전을 해 놓고 후발주자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하는 ‘사다리 걷어자기’에 불과하다며 맹렬히 비판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이 비교우위론을 바탕으로, 자신이 가장 잘 하는 것을 하도록 한다는 명분으로 개발도상국들을 영원히 농업이나 보다 낮은 수준의 산업단계에 묶어놓으려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것이다. 특히 신자유주의자들이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지적 재산권의 보장에 대해서는 개발도상국이 지적 재산권을 보장하는 것은 기술적 경쟁력을 확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술 개발 능력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이 로열티를 지불하도록 하여 오히려 그들의 경제발전을 어렵게 만든다고 비판한다.

이렇듯 장하준 교수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여러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과 정, 이와 관련된 통계자료와 사료들을 검토하며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이 역사적 사실과는 다른 자신들의 경제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자신이 올라온 사다리를 치우는 비겁한 행동이라며 맹렬히 비판한다. 이 과정에서 제시된 영국, 미국, 일본 등 경제 선진국들의 경제발전 과정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선진국들의 경제사를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면서 신자유주의자들의 자기모순을 폭로하는 중요한 논거가 된다. 그들이 그 당시에 행했던 여러 행동들은 현 시점에서 주장하는 바와 상당부분 상충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철저한 보호무역정책을 시행했고, 자본시장을 통제함으로써 외국자본의 개입을 막고자 노력했으며 외국의 지적재산권을 보장하기는커녕 외국인의 지적재산권을 무시함으로써 적극적으로 외국의 기술을 빼내 자국의 기술로 만들고자 노력하였다. 이런 일련의 정책들을 통해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그들이 현재는 정반대의 입장에서 개발도상국들에게 자유무역과 자본시장개방, 지적재산권 보장을 요구하고, 이를 통한 경제발전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신자유주의자들에게도 자기변호의 기회를 주는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나쁜 사마리아인들』에 따르면 신자유주의는 30여 년간 세계 경제정책의 방향을 주도해나가며 개발도상국을 위기에 빠뜨리고 있는,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는 이론임이 분명하다.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장하준 교수가 제시하는 경제발전은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신자유주의적 입장에서 자유무역과 지적 재산권의 보장을 통한 것보다는 유치산업 보호와 보호무역, 선진국의 기술지원을 통해서만 일어날 수 있다. 과거의 사례를 통해 볼 수 있듯이, 심지어 신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비교우위 이론에서 말하듯이, 자유무역을 통해서는 경제 발전이 아닌 기존의 경제구조를 고착화시키는 현상유지만이 가능하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선진국은 높은 수준의 기술이 바탕이 되는, 농업보다는 공업이나 서비스업에 중점을 두는 경제체제를 갖주어야한다. 따라서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신자유주의적 정책보다는 국가가 보다 개입하는, 큰 정부에 의한 경제발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장하준 교수가 제시하는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은 쉽지 않아 보인다. 경제선진국들이 ‘사다리를 걷어찬’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금고’에 넣어두었기 때문에 선진국들이 가진 ‘열쇠’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들은 현재 경제적인 부분 뿐 아니라 정치적인 부분에서도 약소국에 속하기 때문에 강대국이 반대하는 정책을 강력하게 밀고나가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에 제시된 비교적 경제 발전에 성공한 나라들은 신자유주의가 득세하기 이전에 경제발전의 틀을 닦은 나라들이다. 장하준 교수가 말하듯 이들이 발전하던 시기만 해도 선진국들의 다른 나라에 대한 경제정책 간섭이 심하지 않았으나 1982년 제3세계 외채위기 이후 선진국들은, 혹은 그들이 장악한 여러 경제기구들은 투자의 대가로 경제정책의 수정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강도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개발도상국이 나름의 경제발전 계획을 수립하는 것을 이들이 쉽사리 허락할지, ‘사다리가 들어있는 금고의 열쇠’를 순순히 넘겨줄지는 의문이다.

또한 개발도상국들이 사다리를 찾는다고 해도 그 사다리가 온전한 사다리일지도 의문이다. 유치산업의 발전과정이 그 이후의 경제구조를 왜곡할 수 있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는 정부 주도로 경제 발전에 성공한 우리나라의 사례가 많이 제시되고 있다. 특히 세계은행에서도 우려를 표했던 포항제철소의 건설 등의 역사적 사례를 돌이켜볼 때, 유치산업 육성을 통한 경제발전의 중요한 모델 중 하나가 우리나라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이후의 우리나라에 대한 언급은 IMF 위기에서 있었던 IMF의 불합리한 경제 간섭에 국한되어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사례가 세계에 권유할 만큼 바람직한 것인지는 의문이 든다. 우리나라는 경제발전과정에서 몇몇 재벌위주로 유치산업을 육성하면서 경제체제에서 재벌기업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과도하게 커져버린 상황이다. 이로 인해 현재의 한국사회에서는 재벌 총수들이 횡령 등의 화이트칼라범죄는 물론이고 심지어 폭력행위를 저지르더라도 처벌로 인한 재벌의 투자위축을 우려한 나머지 이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실정이다. 왜곡된 경제구조로 인해 사법체계와 정의까지도 흔들리고 있는 사회가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현주소인 것이다. 그러나 장하준 교수는 이런 사실은 언급하지 않고 지나가는 경향이 있다. 유치산업 육성이 국가 전체의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에 있어 분명 바람직하기는 하다. 그렇지만 유치산업의 육성과정에서 경제발전 그 자체에만 의미를 부여해 독점기업을 양산하는 것보다는 그 내부의 경쟁도 유도하여 적절한 시장구조를 육성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유치산업 육성이 그리 쉬운 일도, 만병통치약도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하준 교수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제시한 여러 논의들을 통해 우 리가 신자유주의에 대해 가지고 있는 합리성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정의롭지 못한, 빈익빈 부익부를 불러오는 경제사상이라는 막연한 비판적인 시각에 논리성을 더해주고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 이면에 들어있는 여러 모순점들을 지적해주고 있다. 또한 이러한 장하준 교수의 일련의 논의는 역사적 사실과 통계적 자료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서 누구도 쉽사리 부정하기 어렵다는 엄정난 장점과 설득력이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여러 장을 통해 신자유주의자들의 시각 하나하나를 파헤져 비판하고 있는 점은 이 책에 담긴 여러 추천사들에서 말하듯이 이 책을 돋보이게 만드는, 여러 유명 인사들이 장하준 교수와 그의 여러 저작들을 최고의 경제학 서적으로 일컫게 만드는 중요한 이유가 될 것이다.

특히, 이런 점에서 책 막바지에서 장하준 교수가 지적하는 기울어진 경기장에 대한 논의는 신선하다. 많은 신자유주의자들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공정한 경쟁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룩하기 위해, 전 세계가 경쟁할 수 있는 ‘평평한’ 경기장을 만들기 위해 표준적인 규칙을 정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장하준 교수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여러 실제 스포츠 종목에서 고려하는 연령, 성별, 체급 등에 해당하는 경제발전 정도에 대한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무조건적인 자유경쟁은 오히려 불공정한 경쟁을 조래하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나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한 단면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또한 장하준 교수는 ‘공정 경쟁’이라는 미명 하에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요하여 조그만 시장으로 개발도상국을 묶어두는 것보다는 오히려 경제발전 정도를 고려한 공정한 경쟁을 통해 장기적인 안목에서 더 큰 시장을 확보하는 것이 선진국에게도 유리하지 않은지 선진국들에게 비판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정당하지 않은, 사실과 다른 신자유주의의 관점에 얽매여 개발도상국에게서 우리가 올라온 사다리를 빼앗기보다는 신자유주의에서 벗어나 그들에게 기꺼이 사다리를 내어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것이 진정 우리의 경제를 발전시키고 세계를 빈곤으로부터 구할 수 있는 경제문제의 ‘마스터 키’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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