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웃을, 정말 ‘네 몸과 같이’ 사랑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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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을, 정말 ‘네 몸과 같이’ 사랑하십니까?

김규항, 『예수전』을 읽고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서경국


1. 나의 신앙

나는 모태신앙을 가지고 있다. 부모님께서 광주에 있는 교회에서 결혼을 하셨고, 나는 태어나자마자 교회로 가서 유아세례를 받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20년간 같은 교회를 다녔다. 그 교회는 신앙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상당히 보수적인 교단에 속한 교회였다. 교회를 다니면서 여러 가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을 밖으로 표현하는 것은 ‘믿음 없음’의 증거가 되는 것 같아 꾹꾹 눌러 놨어야했다. 자연스레 나는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믿음만이 유일한 신앙이라고 생각했다. 교회에서 배운 것이 곧 진리라고 굳게 믿었다.

그렇지만 대학에 와서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직접 보게 된 이 사회의 현실은 교회에서 배운 것과 너무 달랐다. 내게는 모든 것이었던 교회가, 실은 우리 사회에서 지극히 보수적인 집단을 뿐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불교, 천주교 및 타 종교는 무조건 사탄이라고 정죄하면서 무슨 내용인지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실제로 내가 접한 타 종교는 개신교만큼이나 가치 있는 것이었고 때로는 우리 사회에서 더 정직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처음에는 갈등을 하다가 점점 교회에서 멀어지게 되었고, 결국에는 신앙이라는 것 자체를 버리게 되었다.

그러다가 다시 내가 신앙을 되찾게 된 것은 군대에 막 입대하고 나서였다. 원래 약했던 체력에 군대 부적응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심한 감기를 앓다가 결국에는 피를 토하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곳에서 폐결핵 판결을 받고 격리 병실에 수용되었다. 극도로 몸이 약한 상황에서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 느껴지는 고독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아는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 그렇게 나는 다시 신에게 내 삶을 의지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대학에 와서 보고 느낀 것들을 모두 무시해버리고 그냥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렇게 고민하던 중에 몇몇 종교학 책을 읽게 되었고, 그 책들을 통하여 ‘다른 기독교’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대할 때 즈음 나는 ‘경동교회’라는 곳을 찾아갔다.

장충동에 있는 경동교회는 국내의 대표적인 진보적 신학자 김재준 목사가 세우고 강원용 목사가 키운 교회이다. 보다 사회 참여적이고 개방적인 신학을 공유한다는 대한기독교장로회에 소속되어 있다. 실제로는 어떨지 몰라도, 향린교회와 더불어 가장 진보적인 교회 중에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곳에서 전에 보지 못한 열려있는 목회자님, 나와 비슷한 갈증을 안고 경동교회를 찾은 사람들과 함께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2. 선한이웃클리닉의 휴진

경동교회의 뿌리에는 ‘선린형제단’이라는 모임이 있다. 선린 형제단은 1935년 전후 북간도 용정 지역에서 생겨난 기독 학생 모임이다. 강원용 등을 중심 멤버로 하고 젊은 신앙인들이 힘을 합쳐 복음 전도, 신앙 훈련, 교육과 사회봉사를 목적으로 하는 신앙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들은 광복 이후 이북과 일본에서 들어오는 피난민들, 특히 이북에서 내려와 공부하는 유학생들 가운데 식비나 학비가 어려운 젊은이들과, 삼팔선으로 막혀 이북에 있는 부모로부터 학비를 받을 수 없게 된 학생들을 돕는 일을 하였다. 더불어 신앙 교육을 시작 하였고 이것이 경동교회로 발전하였다.

현재도 경동교회는 다양한 사회봉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 중 특히 ‘선한이웃클리닉(이하 선이클)’이 ‘선린형제단’의 취지를 계승하고 있다. 선이클은 의료보험의 사각지대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 서비스로, 매 달 첫째 주와 둘째 주에 교회 건물 내부에 마련된다. 무급봉사하시는 의사선생님들께서 진료를 하시고, 교회 내․외부의 다양한 사람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한다. 2000년 4월에 시작하여 9년간 매달 운영되고 있으며, 현재까지 약 4만 여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진료를 받았다. 보통 한번 진료할 때 80~9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200여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을 맞이한다. 나 역시 선이클에서 매 달 첫째 주에 봉사를 하고 있다.

진료와 약 처방이 모두 무상으로 이루어지고, 대기자들을 위한 빵과 음료도 준비해야하기 때문에 많은 비용과 노력이 들어간다. 더군다나 가장 바쁜 일요일에 교회 공간의 상당부분을 할애하여 외부 사람들을 위한 봉사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이클은 9년을 이어왔다. 선이클을 운영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야말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경동교회가 우리 사회에서 인정받고 존경받는 데에는 선이클의 역할이 크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지난 9년간 명절, 휴일을 가리지 않고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열렸던 선이클이 다음 달 한 달 동안 휴진을 한다. 다음 달 첫째 주일이 창립기념주일이고 셋째 주일은 성탄절기라서 바빠서 그런가보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황당하게도 그것은 요즘 요행하고 있는 신종 플루 때문이었다.

교회의 요직에 있지 않기 때문에 잘은 모르지만 평소에도 교인들 사이에 불만이 많다고 한다. 교인들이 생활하는 공간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온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이 적지 않다고 들었다. 그래서 교회 밖 다른 공간을 빌려서 선이클을 하자는 주장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깔려있던 불만과 두려움이 이번 신종 플루로 인해서 폭발한 것이다. 플루에 걸려있을지도 모르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교회에 들일 수 없다는 것, 그들이 왔다 갔다 하는 교회에 마음 놓고 자녀들을 보낼 수 없다는 주장이 승리한 것이다.

그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많은 대형 행사들이 취소되고 있고, 모두들 공공장소에서는 조심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만큼 신종 플루는 우리 사회에 심각한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을 듣고 지금껏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경동교회에 크게 실망 할 수 밖에 없었다. 병원이, 병 때문에 문을 닫는다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의료시스템의 사각지대에 놓인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봉사하는 선이클이, 플루에 걸려있을지도 모르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피하기 위해서 휴진을 한다는 것은 그 근본 정신에 크게 어긋나있는 것이다. 결국 경동교회도 외국인 노동자들을 ‘내 몸과 같은 이웃’이 아니라 철저히 외부인, 타자로 인식하고 있었다. 아니, 그들을 하나의 ‘병균’으로 여기고 있었다. 아파서 쓰러져있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자기 시간과 돈을 들여 치료해주었던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3. 서울역 노숙자를 대상으로 한 봉사활동

며칠 전 교회 내의 모임에서 서울역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한 봉사활동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다니고 계시는 분께서 사회봉사실습으로 그곳에 나갔다가 이후로 계속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계신다고 했다. 노숙자분들께 차와 음료를 대접하고, 가능하면 쪽방이나 쉼터로 안내해드리는 일이었다. 가끔 쪽방에서 노숙자분들과 하루 밤 자고 오기도 한단다. 다른 분들도 시간이 되면 함께하자는 제안을 하셨다.

그 제안을 듣고 고민에 빠졌다. 무척 가치 있는 봉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선뜻 나설 수가 없었다. 얼마 전 기사에서 노숙자들이 신종 플루에 무방비로 노출되어있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지금 봉사하러 갔다가 플루에 걸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다음주말에는 일본으로 여행을 가기로 했고, 그 이후에는 기말고사가 있는데……. 플루에 옮으면 여러 가지로 곤란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플루가 좀 잠잠해지면, 혹은 바쁜 일이 지나가면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런 고민을 한참 하다가, 이렇게 갈등하는 나의 모습이 내가 비판했던 선이클의 모습과 너무나 똑같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그렇다. 나도 마찬가지 인 것이다. 노숙자들은 내게 철저한 타자였고, 나는 그들을 ‘병원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봉사라는 것을 여건이 갖춰졌을 때, 내게 ‘남은 것’을 주는 그런 시혜로 여기고 있었다.

막상 내게 그런 일이 닥치자 나 역시 갈등하고 있었다. 참으로 부끄러웠다. 그리고 예수님이 생각났다. 예수님은 그런 분이 아니었다. 예수님의 사역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었다.

3. 예수

그리고 나병환자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무릎을 꿇고] 간정하며 “선생님은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였다. 그러니 예수께서는 측은히 여기시고 당신 손을 펴 그를 만지시며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시오”하셨다. 그러자 즉시 그에게서 나병이 물러가고 그는 깨끗하게 되었다. (막 1: 40~42)

마가복음 1장, 예수님의 초기 사역 가운데 한 장면이다. 이 당시 나병, 문둥병은 부정한 전염병으로 여겨져 환자들은 격리되어 살아가야 했다. 아마도 오늘날 신종 플루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두렵고 위험한 병이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나병 환자를 고쳐주신다. 그런데 그냥 깨끗하게 되라고 말씀으로 고치는 것이 아니다. 놀랍게도 그는 ‘당신 손을 펴 그를 만지시며’ 그를 낫게 하신다. 보기만 해도 부정을 탄다고 여겨지던 병자를 직접 만지신다. 그리고 병이 낫는다. 그가 만진 것은 단지 그의 몸이 아니라 그의 마음이었다. 그가 치료한 것은 단지 그의 병이 아니라 그의 영혼이었다.

“측은히 여기시고”는 그리스어 ‘스플랑크니조마이’를 옮긴 것인데 ‘창자, 내장’을 뜻하는 ‘스플랑크논’의 동사형이다. 한국어에는 기막히게도 같은 말이 있다. ‘애끊다’는 말이다. ‘애’는 바로 ‘창자, 내장’을 뜻하고, ‘애끊다’는 말은 ‘몹시 슬퍼서 창자가 끊어질 듯하다’는 말이다. (중략) 바로 이것이 예수라는 사람의 속내이며 행동의 원천이다. 예수의 모든 행동은 ‘모든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애끊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김규항, 『예수전』, 돌베개, 2009, p. 38)

그의 사역은 ‘모든 고통 받는 사람에 대한 애끊는 마음’으로부터 시작한다. 스스로를 병자와 과부, 죄인들의 친구라고 여기며, 그들을 치료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는데 그의 짧은 공생애를 바친다. 저자는 그를 신의 아들로 여기지 않고 있지만, 신앙인인 나로서는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그것이 더욱 감동적이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피조물인 인간의 모습을 하고 온 것 자체가 겸손이요 낮아짐이다. 더군다나 그는 세상에 와서 신의 아들(필자의 견해에 따르면 ‘하나님 나라 운동’의 지도자, 혹은 랍비)의 특권을 모두 버리고 당시 사회의 가장 하층민들과 어울리며,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라고 선포한다.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은 바로 이 ‘스플랑크니조마이’이다.

둘째가는 계명은 이렇습니다.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 이 계명들보다 더 큰 계명은 달리 없습니다. (막 12:31)

예수께서 말씀하신 가장 큰 계명 중에 하나가 바로 이웃사랑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한 자선이나 적선이 아니다. 자기 자신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것, 즉 ‘나’가 ‘이웃’이 되고 ‘이웃’이 ‘나’가 되는 그런 사랑이다. 나와 너의 구분이 없는, 불교의 ‘자비’와 상통하는 그런 사랑을 의미한다.

하지만 앞서 살펴보았던 선이클과 나의 ‘봉사’, 우리가 실천하고 있다는 ‘사랑’은 그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나의 ‘사랑’은 철저히 자신과 타자의 구분을 바탕으로 행해지고 있다. 나의 이웃보다 내 몸을 더 사랑하는 것이 지금 나의 모습이다.

오늘날 ‘바리사이인’은 기독교나 성서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서조차 ‘위선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바라사이파, 즉 바라시아인들은 그러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오히려 이스라엘 사회를 통틀어 가장 양식 있는 사람들이었다. (중략) 그들은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모든 이방 문화로부터 이스라엘을 분리시켜 그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사람들이었다. (중략) 예수는 하느님의 관심이 율법을 잘 지키는 경건한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먹고살기 위해선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죄인들에게 있음을 선포한다. 그들이 하느님 나라의 주인공이고 기존의 모든 가치들은 그들을 중심으로 재정리되어야 한다. (Ibid, pp. 47-48)

어쩌면 나의 모습은, ‘당위’라는 것으로 움직이는 바리새파 사람들의 모습과 같았는지도 모른다. 내가 하고 남은 것을 나누고, 내가 여건이 될 때만 봉사하고, 양심에 찔리지 않을 정도로만 사랑하며 살아가는 신앙인. 그것이 바로 나의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4. 하나님 나라

믿음이란 무엇일까? 김규항은 교회가 예수를 교리 속에 가두어버리고, 그의 삶은 지워버린 채 신앙의 대상으로만 예수를 사고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맞는 말이다. 지금 한국 교회가 믿는 예수는 마가복음 14, 15, 16장에 나와 있는 예수뿐이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한’ 예수를 믿고 있다. 물론 그것은 정말 중요한 사실이며, 신앙인이라면 굳건히 지킬 믿음이다. 하지만 정작 예수가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은 교회와 교인들이 외면하고 있다. 마가복음 1장부터 13장까지, 예수께서 억압받고 고통 받는 이웃들과 함께하신 모습, 부자들을 경계하고 나눔과 비움을 강조하신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큰 교회들도 엄청난 돈을 사회봉사에 쓰고 있지만, 그 보다 많은 돈을 자신들의 세 불리기에 사용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쓰고 남은 것을 이웃과 나누는 것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사랑이 아니다.

예수의 삶을 보며 나의 삶을 돌아본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많은 공부를 하고, 실력을 키워서 이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을 위해 학창시절 열심히 공부해서 지금 다니는 대학교에 입학했고 지금도 공부하고 있다. 하지만 만약 내가 억압받고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외면한다면 차라리 실패하는 게 낫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다음에 나누자’라는 것은 진부한 핑계에 불과하다. 지금, 바로 여기에서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움직여야 한다.

5. 죽으면 죽으렵니다.

“어서 수산에 있는 유다 사람들을 한 곳에 모으시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게 하십시오, 사흘 동안은 밤낮 먹지도 마시지도 말게 하십시오, 나와 내 시녀들도 그렇게 금식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고 난 다음에는, 법을 어기고서라도, 내가 임금님께 나아가겠습니다. 그러다가 죽으면 죽으렵니다(편집자 주).” (에스더 5장 16절)

나는 예수님이 아니다. 내가 그 노숙자분들을 찾아간다고 해서 그들이 어떤 큰 변화나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작은 훈련이다. 나의 이웃이 누구인지 가서 만나고 이야기하고 직접 확인하라는 뜻이다. 하나님을 믿는 이상 나의 행복은 더 많은 물질과, 더 큰 영화와 건강에 있지 않다. 아프고 힘들더라도, 세상이 봤을 땐 실패했더라도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펼치기 위해서 사는 것이 나에겐 더 큰 행복이다. 이것은 아주 작은 것일 뿐이다. 이 작은 것조차 해내지 못한다면 더 크게 쓰임받기를 기도할 수 없다. 지금 두려워하고 그분들에게 가지 못한다면, 나중에 내가 어떤 위치에 있든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못할 것이다. 그 땐 또 그 나름의 핑계를 대고 도망갈 것이다.

마음을 열고 가야겠다. 그러다가 죽으면 죽으련다. 교회에서 지겹도록 들은 부활과 영생은, 이럴 때 믿으라고 있는 건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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