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잡이 미스터 리, ‘아무런’이들의 어색한 ‘공존’

학부생부문 3등작

왼손잡이 미스터 리, ‘아무런’이들의 어색한 ‘공존’

권리, 『왼손잡이 미스터 리』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전상희


1. 아무렇지 않게 건넨 아무런 이야기

고추장을 한가득 퍼서 쓱싹쓱싹 밥을 비비고 있는데, 마주 앉은 오빠는 한창 흥이 올라 말을 이었다.

“그랬다니깐. 난 운이 좋았지. 난 한 달 만에 풀려났으니깐.”

“한 달? 그게 운이 좋은 거야? 근데 왜 풀려났는데?”

“밥도 안 주고 앉은 자세로 한 달 내내 있게 하니깐, 이 엉덩이가 어떻게 됐겠냐. 살이 하나도 없어진 거야. 앉아있을 수가 없어서 그대로 고꾸라지니깐 그제야 내보내주더라. 거기 고추장 좀 더 줘봐.”

그는 고추장을 듬뿍 넣어 비비며 탈북 후 잡혀있었다던 감옥의 이야기를 계속했고, 나는 어설픈 추임새와 함께 그저 열심히 밥을 먹었다. 사실 내 입으로 어떤 말을 뱉어야 할 지 잘 몰랐기 때문에, 입 안 가득 밥을 밀어 넣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힘들었겠다, 고생 많았구나’하는 말은 그 고통의 10분의 1이라도 겪어본 적 없는 내가 함부로 건네기엔 너무 건방진 말 같았고, 그렇다고 슬프고 걱정 어린 눈으로 쳐다보며 안쓰럽게 여기는 것도 지금 내 앞에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고 있는 오빠를 분수 넘치게 동정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오빠의 이야기는 소소한 하루 일과나 지나간 추억처럼 아무렇지 않게 건네졌지만, 정말 아무렇지 않게 들을 수만은 없는 이야기였다.

작가 권리는 매운 비빔밥을 목에 넘기기 바쁘게 그보다 매운 자신의 이야기를 툭툭 건네던 그 오빠를 떠올리게 한다. 첫 작품 <싸이코가 뜬다>에서 <왼손잡이 미스터 리>까지 단순히 제목이 주는 오묘한 느낌에 끌려 덜컥 읽기 시작한 독자가 있다면, 지난 날 나의 모습과 같지 않았을까 싶다. 제목만큼이나 발랄하고 발칙하기까지한 서사를 재미있게 읽다보면 언젠가 독자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갑작스레 흘러나오는 사회의 무거운 이야기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때 누군가는 입 안에 밥을 밀어 넣던 나처럼, 그저 눈 안에 활자를 구겨 넣었을 수도 있겠다. 이렇듯 작가 권리의 책은 ‘아무렇지 않은 어법’으로 전하는 ‘아무런 이야기’이다.

2. 다수와 소수의 거친 분리

<왼손잡이 미스터 리>는 탈북자 미스터 리가 남한에 와서 미아장이라는 곳에서 머물면서 생긴 사건을 다루고 있다. 미스터 리는 한 탈북자의 살인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한 기자는 이를 추적한다. 그리고 소설의 중심에는 미스터 리가 머무는 ‘미아장’이 있는데, 이곳에는 빨갱이라면 자다가도 번쩍 일어날 말 그대로 ‘우익’이라는 이름을 가진 할아버지와 엘리트 코스를 밟다 트럭 운전수와 사랑에 빠져 가정을 꾸린 ‘은유’ 그리고 그의 남편 ‘민호’가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미로’와 ‘미아’라는 범상치 않은 자식들이 있다.

소설은 남한 사회의 소수계층인 탈북자 미스터리와 왼손잡이 미로를 두 축으로 진행된다. 이들을 중심으로 소설은 유쾌하게 혹은 진지하게 우리 사회의 좌우 이념 문제와 탈북자의 문제를 건들고 있다. 미로의 왼손잡이는 사회에서 억압받는 소수계층의 상징이며, ‘좌’라는 상징성으로 좌우문제를 대변하기도 한다.

“좌천, 까락잡이, 짝배기, 왼고개…… 왼쪽과 관련된 건 죄다 나쁜 말이잖아.”(p.31)

이에 반해 우익, 민호, 은유는 우리 사회의 ‘대다수’ 즉 오른손잡이, 남한사람, 우익이라는 범주 안에 안전하게 편입되어 있는 인물들이다. 우익이라는 인물은 좌익을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구시대적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인물로 나온다. 그의 캐릭터는 다소 과장되어 표현되어 있는데, 이러한 과장성으로 인해 미로와 미스터리의 소수성은 더욱 부각된다.

빨갱이란 말은 우익의 머릿속에서 ‘빨갱이=좌익=왼쪽……’ 이란 단어로 번져 나갔다. 그는 왼쪽에 관한 모든 것을 싫어했다. 왼쪽으로 걷지도 않았고 왼쪽 이로는 밥을 씹지도 않았다. 아예 왼쪽 치아는 양치질도 안 한지 오래되어 엉망이었고, 좌측통행하는 길 반대편 사람들과 부딪치기 일쑤였다.(p.33)

사실 민호는 가장 평범한 남한 사람을 상징한다. 사회의 대다수임을 자처하고 있는 우익은 극단적 우익분자이고, 은유는 엘리트 계층임에도 사랑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한 낭만주의자이다. 이런 소설적 요소를 뺀 지극히 건조한 인물이 바로 민호인 것이다. 또한 우익이나 은유, 미로, 미아는 각각의 이름에서 제 나름의 상징이 있다. 그러나 민호는 정말 흔하디흔한 이름의 하나에 불과하다. 그는 오히려 아무런 상징 없는 이름에서 ‘평범함’ 소위 ‘정상적’이라는 상징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정상성’을 기준으로 다른 이를 손쉽게 재단하고 평가한다.

“딸은 왼손잡이에, 아들은 게이에. 완전히 비정상이다, 비정상!”(p.34)

이렇게 작가는 이름의 상징뿐만 아니라 과장된 캐릭터 부여를 통해 소설 속 인물들을 거칠게 나누고 있다. 다수와 소수. 주류와 비주류.

3. 한국사회의 현실적 마술주의

중남미 작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작품을 말할 때 흔히 마술적 현실주의를 말하곤 한다.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마술적 내용들을 말하나, 그러한 장치들이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기법을 말한다. <왼손잡이 미스터 리>의 내용들은 얼핏 마술적 현실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환상과 현실을 자유로이 오간다. ‘미로’와 ‘미스터리’가 만나게 되는 가상 게임의 공간 ‘왼손잡이 미스터리’나, 미로의 꿈 안에 미로네 가족들이 함께 갇히게 되는 상황이 그러하다. 그러나 이러한 공간은 사실 명백한 ‘가상’으로 나타나 있다. 오히려 이러한 가상의 공간보다, 현실의 공간이 ‘마술적 기법’과 더 닮아 있다. 즉 왼손잡이를 탄압하고, 탈북자를 내모는 극단적 사회 환경의 부조리함이 오히려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권리의 이 작품은 마술적 현실주의가 아닌, 현실적 마술주의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권리는 현실과 가상을 오가며 좌우를 나누는 사회의 기준을 비꼰다. 사회의 소수계층 왼손잡이 ‘미로’와 탈북자 ‘미스터 리’는 ‘왼손잡이 미스터 리’라는 게임에서 만난다. ‘왼손잡이 미스터 리’는 마을을 떠나 새로운 던전을 정복하는 여정을 다룬 게임으로 이들은 이곳에서 만나 가상의 연인이 된다. 게임은 가상이면서 현실이다. 그야말로 왼손잡이와 탈북자가 만나 서로 의지하며 결합하여 ‘왼손잡이 미스터 리’를 만들어 낸다.

빨간 밤이었다. 미스터 리는 집을 나섰다.(중략) 지랄 같은 강은 저 앞에 있었다. 그는 땅을 발밑으로 밀어내듯이 박차고 달렸다. 얼어 버린 땅은 대답을 주지 않는다. 그저 질문만 줄뿐(p.7)

이 사회의 소수자 ‘미로’와 ‘미스터 리’는 게임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만나는 반면, 우익과 민호와 같은 다수와 주류를 자처하고 있는 이들은 ‘미로’의 꿈 안에서 만나게 된다. 이들은 ‘미로’의 꿈 안에서 미로(迷路)를 만나게 되고, 이 미로를 풀어가면서 이들은 왼손잡이의 세계를 마주하게 된다. 왼쪽 이로는 음식도 씹지 않을 만큼 오른쪽을 고수하던 우익도 왼쪽 코너를 끝내 돌게 되는 장면은 꽤나 상징적이다. ‘우익’이 좌향좌로 돌아 길을 걷게되는 것. 소설 내내 이야기를 풀어왔던 방식처럼 ‘거친’ 상징이다.

오른쪽이 안 보인다던 우익은 우회전 길이 나올 때마다 몸을 뒤로 돌렸다. 사람들이 우회전 할 때 우익은 홀로 좌회전했다. 그토록 왼쪽 길을 싫어하던 우익이 뒷걸음질 쳐서 왼쪽으로 돌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였다. (p.253)

이처럼 이 사회의 소수와 다수는 가상의 공간을 머물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가상의 공간보다 이들이 실제로 존재하던 현실의 공간이야말로 비현실성이 극대화되는 공간이다. 미로의 꿈속에서 사람들은 왼손잡이의 세계를 이상하게 여겼지만, 현실은 단지 손의 방향만 바뀐 극히 편향적 세계이다. 또한 게임의 과정은 탈북의 과정과 닮아있고, 오히려 게임보다 치열하고 비인간적이다. 작품의 후반부에 ‘미스터 리’가 개입된 살인사건을 취재하던 기자는 탈북과정에 자본이 개입되어 일어나는 비인간적 세태를 목격하게 된다. 이처럼 현실은 가상의 공간보다 비현실적이고 부조리한 공간으로 ‘현실적 마술주의’가 자행되고 있다.

4. Ctrl+Alt+Delete

권리는 아무렇지 않게 아무런 이야기를 건넨다. 탈북자나 소수계층의 인권을 재조명했다거나, 우리사회의 편향적인 태도를 꼬집어보겠다는 거창한 타이틀은 달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와 같이 무방비한 상태의 독자들은 그녀에게 쉽게 노출된다. 그리하여 책을 들기는 쉽게 들었는데, 내려놓기는 쉽지 않게 된다. 이렇게 누구나 쉽게 그들의 문제를 함께 고민해볼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그녀의 책은 의미 있다.

그러나 작가도 우리와 함께 고민할 뿐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마치 앞서 언급한 얼어붙은 땅과 같다. ‘얼어버린 땅은 대답을 주지 않는다. 그저 질문만 줄뿐.’ 그녀의 이러한 태도는 작품 첫 부분부터 나타난다. 이 작품은 ‘재부팅을 위한 세 손가락의 키보드 협주곡’이라는 챕터로 시작한다. 이는 ‘Ctrl+Alt+Delete’라는 게임을 취소하는 컴퓨터 단축키를 일컫는다. 그녀는 개성강한 인물들을 나열하고,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고,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여러 문제를 풀어헤쳐놓지만 결국 그 세 키를 누르고 만다. 그렇기에 아쉽다. 이젠 대답할 시대도 되지 않았나 싶다. 왼손잡이, 좌우문제, 탈북 문제.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문제제기가 아니다. 이 소설 역시 별다른 해결책 없이 사건을 마무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탈북자를 우리사회의 부적응자로 치부하고 바라보는 시각은 이젠 낡지 않았나 싶다. 대학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탈북자 대안학교라는 곳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탈북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그들을 처음 보고 무척이나 놀랐는데, 그 이유는 서로가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남한의 문화에 잘 알고 적응해있었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대중문화, 현대 정치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알고 있던 그들의 치열한 생존력이나 적응력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혹은 안쓰럽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 이후로 탈북자에 대한 교육을 통해 이들이 우리 사회에 미리 많은 것을 알고 배워 적응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이 소설이 탈북자의 표피적 부적응을 지적한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 그들은 누구보다 우리 사회에 잘 흡수하고 있으며, 나는 그렇기에 그 흡수의 부작용이 염려되기도 한다. 이제 우리 시대의 소설은 그 내부적 문제를 논해보아야 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겉모습과 말투, 그리고 사상은 누구보다 우리와 닮아가고 있지만 그 안에 해결되지 않는 내면적 문제를 함께 고민해보고 싶다. 이제는 우리와 닮아야만했던 그들의 아픔을 들어보고 싶다. 다수 안에 편입된 소수의 흔적이 희미해지는 문제 말이다.

5.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공존의 속내

탈북자 대안학교 친구들을 만난지 어느덧 2년이 되고 있다. 질문 하나하나가 어렵던 나만큼이나 나에게 마음을 열지 않던 친구들이 서로서로 변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들은 마음을 열었다는 표시인지, 가끔씩 저렇게 ‘아무렇지 않은 듯’한 이야기를 건넨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깜짝깜짝 놀라고 나의 눈과 입은 갈 길을 잃고 만다. 그러나 이제는 함께 고민하고 싶다. 더 이상 가상의 공간을 빌리지 말고, 우리가 밟고 있던 이 땅에서 서로의 문제를 어루만져 보고 싶다. 왼손잡이를 끝내 고쳐야했던 ‘미로’처럼, 이제 우리와 너무나 닮아져버린 그들이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일지라도 그들은 사실 아직도 ‘아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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