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불리 도약하지 않기: 시장, 자기 조절적 시장(체제), 자본주의

학부생부문 2등작

섣불리 도약하지 않기:
시장, 자기 조절적 시장(체제), 자본주의

칼 폴라니, 홍기빈 옮김, <거대한 전환>, 길, 2009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오학준


1.

일본 노무라증권의 고부 노부유키()회장. 그는 아시아 대표 투자은행(IB)의 수장답게 아시아 경제에 대한 낙관론자다. 그는 “아시아는 앞으로도 가장 큰 규모로 성장할 지역”이라며 “글로벌화를 원하는 한국기업이라면 중국만 보지 말고 아시아 전체로 눈을 넓히면 더 많은 기회를 납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애란 기자, “중국만 보지 말라…아시아 전체가 기회의 땅”「중앙일보」 2009년 10월 30일자 E4면)
“전 세계가 미디어 시장의 업종 장벽을 허물어 글로벌 미디어 업체를 육성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이는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종합미디어 산업이 미래의 블루오션임을 웅변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늦었지만 우리도 국민적 역량을 모아 글로벌 미디어시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 당리당략에 맞춰 억지를 부리며 이런 국가적 사업의 발목을 잡는다면 국민이 납득하지 않을 것이다.” (사설, “소모적 논쟁 접고 미디어산업 육성에 힘 모으자”, 「중앙일보」, 2009년 10월 30일자 46면)

내가 이 두 기사에서 위화감을 느꼈던 건, 서로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결’들이 시장이라는 하나의 개념 속에 불안하게 양립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결’이란 것을 둘로 나누어 본다면, 시장을 ‘기회’로 보는 태도와 시장을 ‘명령’으로 보는 태도일 것이다. 시장을 기회로 본다는 건 무슨 뜻일까? 간단한 모형을 하나 만들어보자. 여기 쌀농사를 짓는 농민이 있다. 그는 열 석의 쌀을 수확했다. 그가 소비할 쌀은 세 석이고, 내년 농사용 종자로 쓸 쌀이 두 석이다. 다섯 석은 남는 쌀인데, 그에게는 쌀 말고 소금 한 석과 물레 하나가 필요했다. 그는 다섯 석의 쌀을 가지고 시장에 간다. 시장에는 쌀이 필요한 사람들이 소금과 물레를 가지고 와 있다. 농민은 쌀을 주고 그들에게서 소금과 물레를 얻는다. 농민은 시장이라는 제도에 참여하여, 자기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얻었다. 이러한 시점에서 보면 시장은 참여하면 효용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의 장이다.

그렇다면 시장을 명령으로 본다는 건 무슨 뜻일까? 앞에서의 모형을 두 가지 방식으로 뒤틀어보자. 일단 앞서의 모형들이 여러 개가 있따고 가정해보자. 농민이 쌀을 주고 소금과 물레를 받았던 그 시장 근처에는, 다른 시장이 몇 개 있다. 상인들은 이 시장과 저 시장을 옮겨 다니면서 부를 축적했다. 상인들은 시장에서의 교환이 자신들의 생존조건이라는 걸 받아들여야만 했다. 물론 여기까지는 상인과 농민이 각자 다른 방식으로 분리되어 삶을 갈아가는 데 무리가 없다. 한 번 더 뒤틀어보자. 어떤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농민들이 상인처럼 행동하게 되었다. 그들은 농사를 지을 때 이미 시장에서 판매하기를 목적으로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삶을 지탱하기 위한 필수품들이 시장에서 교환되기 시작했고, 그것들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농민들은 자신의 생산물을 시장에 내 놓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 동안 땅을 부쳐 먹던 농민들 가운데 대다수는 토지 주인들과 새롭게 지주-차지농의 관계로 엮이거나, 땅을 떠나 무산노동자가 되어야 했다. 무산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을 마치 시장에서 팔리는 상품처럼 내놓아야 했다. 그 누구도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교환의 방식을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가 ‘거의 상인’처럼 행동해야 했다. 지금 이 순간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 시장은 후자의 모습과 더 닮았다.

이 두 가지의 결은 양립하기가 매우 어려운데, 전자의 시장에서는 시장 참여자가 자의로 참여/탈퇴를 결정할 수 있다면, 후자의 시장에서는 그런 선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시장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이 중 하나의 결만을 포함하고 다른 하나의 결은 배제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게 실은 객관적으로 ‘시장’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눈 앞에 벌어지는 사태를 특정한 방식으로 읽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지 않는가? 이러한 개념 사용을 날카롭게 분별해 받아들이지 않으면, 시장에 대한 논의는 자칫 뱅뱅 돌면서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작성된 지 반 세기나 지난 역사책을 이제 와 거들떠보는 이유는, 내가 이런 논의-중단의 상황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건 아니었는지 반성하기 위해서다. 시장이라는 개념 속에 흐르는 이 양립 불가능한 결들을 예리하게 분리하지 않고 ‘시장’, ‘시장사회’ 같은 말들을 써 왔던 게, 실은 내가 ‘시장’에 대한 내 나름의 논의를 진전시키지 못했던 진짜 이유는 아니었을까? 도대체 왜 지금 우리의 눈 앞에서 벌어지는 사태를 ‘시장’이니 ‘자본주의’니 하는 말로 부르고 있는지를 따져봤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가 부조리하다고 느꼈던 내 부녀의 사태들에 적절한 답을 하지 못하고 질곡에 빠져 있던 게 아닌가 싶었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 아주 약간이라도 균열을 내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의 의미를 꼼꼼하게 다듬고 따져봐야 한다. 역사는,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무심코 사용하는 ‘시장’과 같은 말들을 다듬는 숫돌이다.

2.

폴라니는 시장이라는 단어에 흐르는 두 가지 결을 구분한다. 하나는 실존하는 제도로서의 시장이다. 인류학적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몇몇의 예외를 제외하고, 시장이라는 제도는 어느 시간, 어느 공간에서든 공동체 안에 존재해왔다. 다만 이 교환의 장, 시장은 항상 공동체 구성하는 원리에 종속되어 있었고, 공동체 내부의 일반적인 교환 양식이 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상업적 교환 양식은 자칫하면 공동체 자체를 붕괴시킬 수도 있다는 두려움의 근원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주 최근을 제외하고, 한국에서 친구 생일 선물로 돈을 직접 건네주는 일은 매우 불쾌한 행위였다. 돈을 받은 것이 필요하지 않는 선물을 받는 것보다 훨씬 더 유용하지만, 선물은 오히려 ‘쓸모없는 것’이어야 불쾌감을 주지 않았다. 선물을 받는 사람에게 적당히 유용하지만, 화폐처럼 모든 것과 교환될 수 있을 정도로 쓸모있어서는 안 된다는 게, 한국인의 정서에 항상 잔여물처럼 남아 있다.

이처럼 우리가 ‘자본주의’라고 지칭하는 시기/양식 이전에는 시장에서의 상업적 교환은 보편적인 교환양식이 아니었다. 오히려 호혜, 재분배, 약탈과 같은 교환양식들이 상업적 교환을 억제했다. 상업적 교환, 상업적 부의 축적은 오로지 공동체 바깥,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에서만 제한적으로 존재했다. 왜냐하면 그러한 공동체 바깥, 혹은 사이에는 공동체의 윤리적, 정치적 원리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폴라니가 다른 결로 구별한 시장은, 공동체의 사회적/정치적 원리에 의해 제약되는 부분(sector)이아니라, 공동체의 사회적/정치적 관심을 정향하는 원리(principle)였다. 폴라니는 이 결을 ‘자기 조절적 시장(self-regulating market)’이라고 지칭한다. 기존의 시장은 공동체의 윤리적, 정치적 원리에 의해 제약되어 있었으나, 자기 조절적 시장은 어떠한 특별한 조건들에 의해 사회를 완전히 재구성하는 원리로 승격되었다. 이 특별한 조건들은 시장의 자연스러운 발달의 결과가 아니라, 시장 바깥에 있는 어떤 힘/권력이 개입한 결과이다.

자기 조절적 시장이 ‘원리’라는 건 간단히 말하면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제도’가 아니라는 뜻이다. 자기 조절적 시장은 오로지 경제적인 관심에 의해 자유로이 맺어진 판매자와 구매자의 결속이 사회 구성원 전체에게 효율적인 결과를 가져다 준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아담 스미스는 이러한 가정을 체계화시킨 경제학자이다. 그는 인간을 본래부터 교환의 본성을 지니니 존재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사물을 얻기 위해 타인의 생산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고 규모가 작은 원시공동체와는 달리, 스미스의 시대는 기술의 발달로 인해 생산력이 막 증가하던 시기였고, 시장의 규모도 이전과 달리 작은 공동체들이 연결되면서 하나의 국가 안에 포섭되어 거대해지는 시기였다. 이 사회에서 개인들은 자신의 물건을 생산해 그 일부를 타인의 물건과 교환한다. 그 과정에서 물물교환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화폐가 생겼고, 시장에서의 교환이 ‘일반화’된다. 이 시장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각각 자기의 이해관계에 충실할 때 사회 전체에 효율적인 결과를 산출해낸다. 정치적 제도나 관습들은 이 효율적인 자기 조정의 과정을 방해하는 제약일 뿐이다. 이러한 주장을 바탕으로, 자기 조절적 시장은 일종의 규제적 이념으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교환의 주체는 지금껏 개인인 적도 없었고, 공동체는 그러한 개인의 상업적 교환을 그대로 방치하지도 않았다. 이런 자기 조절적 시장 개념이 온전하게 운용되려면, 국가라는 “기계신”(deus ex machine)이 교환의 매개인 화폐를 법화로서 보증하고, 기존의 공동체를 해체하여 국가 아래의 국민-개인들로 재구성해야 했다. 경제외적인 권력의 개임을 거부하는 자기 조절적 시장의 주장이, 사실은 경제외적인 권력이 개입한 결과라는 폴라니의 결론은, 그 주장 자체가 가지는 허구성을 폭로하는 것이 아닐까? 폴라니가 시장과 자기 조절적 시장을 구분해냄으로써, 우리는 시장이라고 부르는 것에 포함되어 있는 ‘신화’의 모습을 직시하게 된다.

3.

시장과 자기 조절적 시장의 구분을 통해, 우리는 과거는 다른 ‘지금’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자기 조절적 시장이 자연스런 인간 본성의 발현이 아니라 인위적인 이념에 불과한 것이라면, 우리는 자기 조절적 시장이라는 말에서 하나의 ‘단절’을 볼 수 있게 된다. 자기 조절적 시장의 이념 아래에서는, 인간의 역사가 ‘경제적 진보’라는 하나의 목적에 복무하는 매끄러운 선(line)으로 이해된다. 봉건제든, 아니면 고대 국가에서든, 인간에게는 교환의 본성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오로지 그러한 자발적인 교환을 제한하는 경제 외적인 권력만 제거되면 인류의 역사는 경제적으로 진보하는 게 아니겠는가? 이러한 태도에서는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을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게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 자본주의는 언제나 ‘맹아’의 형태로 존재했었고, 그저 제약당하고 풀려나지 못했을 뿐이니까. 이런 입장에서 자본이라는 것은 상업적인 치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시장과 시장 사이에서 상업적 이익을 얻어내 축적한 ‘부(wealth)’와 ‘자본(capital)’이 다를 게 없다면, 우리의 시대를 ‘자본주의’라고 부르든 ‘상업사회’라고 부르든 무엇이 다를 게 있을까?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과 같은 부류의 말은 이러한 선적인 사고의 전형이다. 현실 공산주의가 존재하는 한, 자본주의는 역사적으로 유일한 길이 아니다. ‘공산주의’라는 사실은 자본주의가 하나의 역사적 가능성일 뿐이며, 더 나아가서는 우연히/인위적으로 자본주의라는 길이 인류에게 제시된 것뿐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 공산주의는 붕괴했다. 이제 인류 역사의 자연적이고 필연적이며 유일한 길의 종점이 바로 지금이라는 주장은 힘을 얻었다. 더 이상 ‘자본주의’는 특별한 게 아니라, 인간 역사의 종점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고 아래에서는, 고통 받고 있는 시장 참여자들이 그저 거대한 진보에 수반되는 부수적인 결과, 혹은 우연적인 결과로만 여겨질 뿐이다. 그들을 위한 대책은 적극적으로 마련하지 않아도 좋다. 어차피 이들은 필요악이며, 경제적 진보의 결과는 그들에게 더 큰 부를 가져다 주지 않겠는가? 폴라니가 살아있었다면, 이것은 인간에 대한 모욕이라고 주장했을 것이다. 인간의 고통은 이러한 역사관, 전제를 문제 삼지 않았기 때문에 존재한다. 우리는 이 비참한 상황을 ‘예외적’인 상황으로 보아야 한다.

폴라니는 자기 조절적 시장이 발 딛고 있는 근거들을 따져 나갔다. 그는 더 이상 거슬러 올라갈 수 없는 근거들을 발견한다. 그것은 바로 자연, 인간, 화폐였다. 이 세 사물은 팔리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다. 하지만 자기 조절적 시장이 신화적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 사물이 상품처럼 여겨져야 했다. 산업화 직전의 영국의 상황을 예로 들어 보자. 봉건제적인 사회 질서 아래에서 지방의 영주들은 자신의 토지를 농노가 경작하게 했고, 농노에게 거주와 생존을 보장하는 대신 비경제적인 권력으로 농노의 생산물을 전유했다. 이 상태에서는 토지, 노동력, 화폐라는 상품이 순환될 시장이 없다. 농노든 영주든 자기 조절적 시장이라는 이념/조건에 편입되어야 할 동기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지방영주의 정치적 권력이 왕에게 집중되고, 지방영주에게는 경제적인 권리 외에는 남는 것이 없게 되면서 사정은 변한다. 영국의 독특한 사회경제적 조건들은 영주-농노 관계를 지주-차지농 관계로 변모시킨다. 영주는 농노를 내쫓고 지주가 되어, 토지의 생산성을 향상시켜 줄 차지농의 노동력을 구매했다. 차지농은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생존의 조건을 마련했다. 영주가 차지농에게서 얻을 수 있는 잉여는 오로지 경제적인 착취뿐이었다. 지주는 차지농이 거둔 생산물 중 임금으로 지불하는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만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인클로저(enclosure) 운동이란 이렇게 영주-농노 관계가 지주-차지농 관계로 말려들어가게 되는 사회적 관계 변화의 시작이었다. 누구든지 이 사회적 관계가 작동하기 시작한 이상, 그 관계를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사회적 관계는 언제 어디에서나 발생하지 않았다. 그것은 영국에서 봉건제가 붕괴하면서 나타난 길이다. 이 길은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공동체 성원 모두를 자신의 발 아래에 복속시키지만, 인간 본성의 발현으로서 반드시 어느 곳에서든 등장하는 결과는 아니었다. 베네치아나 암스테르담 같은 곳에서는 도시국가의 발전이 절정을 이루었으나, 프랑스에서는 절대주의 국가가 등장했다. ‘자본주의’의 초기 형태는 오로지 영국에서만 발견되었는데, 그것은 이미 자본주의라는 것이 특별한 사회적 관계를 지칭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해명해야 할 것은 이제 자본주의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다. ‘자본’을 상업적 부와 구별하고, 그럼으로써 ‘독특한 자기 조절적 시장체제에 근거하는 사회적 관계’로서 ‘자본주의’를 구체화하는 것이 필요해진다.

4.

‘자본’과 상업적 부는 어떻게 다를까? 자본은 부의 총량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혹은 구조다.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공장에 있는 방적기계를 우리가 자본이라고 부른다면, 그건 어떤 이유에서일까? 각각의 사물에는 자본의 원소라도 있기 때문에? 하지만 그런 원소는 없다. 저 방적기계는 물건을 만들어내고 있을 때에는 자본이라고 불리지만 낡아서 폐기 처분될 때는 그저 고철로만 불릴 뿐이다. 무엇을 자본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그 사물의 속성 때문이 아니다. 오로지 그 사물이 특별한 ‘관계’에 들어갈 때에만 그 사물은 자본이라 불린다. 방적기계가 잉여를 창출하는 과정에 복무할 때 방적기계는 ‘자본’이라는 과정의 한 요소가 된다. 인간 역시, 노동력이라는 이름으로 그 과정에 참여할 때 비로소 가변자본이라고 불린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것을 자본의 잉여축적 과정에 참여시키지 않으면 부 그 자체는 자본이라고 불리지 않는다.

자기 조절적 시장체제 아래에서는 지주 차지농이든, 자본가든 임금노동자든 이 시장에 참여해야만 한다. 이 사회에서 지주나 자본가의 사적 욕망은 그다지 중요한 목적이 아니다. 오히려 자본의 욕동, 잉여를 창출하기 위한 무한한 과정이 존속하는 게 더 중요한 목적이다. 자본주의는 바로 이런 것이다. 상인이 자신의 부를 축적하려는 욕망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윤축적의 자동적 과정으로서의 자본 운동에 누구든지 참여해야만 하는 시대. 맑스가 본 자본이란, 이 강력한 ‘사회적 관계’로서의 자본이다. 자본은 사물이라기보다는 권력에 가까운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더 이상 인간의 교환 본성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런 결과 아니며, 경제적 진보의 펼연적인 경로가도 아니다. 자본주의는 봉건제의 붕괴 이후에 나타난 것일 뿐, 봉건제를 붕괴시킨 미래의 ‘목적’은 아니었다.

이 권력-자본의 시대에서, ‘시장’은 더 이상 상업적 치부의 기회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따라야 하는 명령이 된다. 생산은 항상 판매와 이윤축적의 목표 아래에 종속된다. 팔리지 않는 상품은 그저 무의미하다. 상품의 가치는 항상 교환 과정에서 축적에 일조할 때에만 인정되기 때문이다. 노동력 상품으로서의 임금노동자는, 어떤 조건에서든 자신을 팔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존재하는 것 자체가 버겁기 때문이다. 이 비대칭적인 권력관계를 평등하고 자발적인 ‘시장’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 자체가, 이미 특별한 가치에 입각한 판단인 것은 아닐까?

물론 ‘자본’이 이윤을 낳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위기를 건너뛰어야 한다. 첫째로 자본가는 노동력을 구매해야 하며, 둘째로 상품은 노동자에게 판매되어야만 이윤을 발생시킨다. 임금노동자의 노동력이 상품이 되어 시장에 등장하지 않으면 자본가는 첫 번째 위기를 맞는다. 또한 자본가는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자가 그것을 구매하도록 강요하지 못하면 두 번째 위기를 맞는다. 폴라니는 인간, 자연, 화폐라는 ‘허구적 상품’을 지적함으로써 자기 조절적 시장의 위기를 언급한다. 그가 보기에 팔리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닌 허구적 상품 위에 자기 조절적 시장의 신화적 힘이 근거하기 때문에, 만약 허구적 상품이 탈-상품화 된다면 신화는 힘을 잃을 것이다. 이는 자본의 첫 번째 위기에 가하는 공격이다.

하지만 자본이라는 사회적 관계 속에 포섭되어 있는 노동, 토지, 화폐까 쉽게 탈-상품화 될 수 있을까? 자본이 두 가지의 위기로 인해 자연스럽게 붕괴하지 않는 것처럼, 탈-상품화 역시 간단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허나 폴라니는 구체적인 ‘탈-상품화’의 방법을 언급하지 않았다.

5.

그럼에도 우리가 폴라니를 읽는다면, 그의 ‘혁명적’인 생각을 뒷받침하는 역사적인 감각과 넓은 시야 때문일 것이다. 그는 시장, 자본주의와 같은 개념을 역사 위에 두고 읽었다. 또한 그것들을 경제적인 분야에 한정지어 읽지도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조절적 시장이라는 신화 속에서 부수적인 불행으로 여겨질 뿐인 인간의 고통을 가벼이 여기지도 않을 수 있었다. 시장이 기회가 아니라 지상명령이며, 우리의 삶 자체를 구성하는 힘이라면 우리는 언제나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자유로운 기회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팔리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는 삶의 태도가, 영혼을 가진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원인이라는 그의 외침에 우리는 답할 자세가 되어 있는가. 나의 말들이 모두 질문으로 끝나는 건, 여전히 내가 암중모색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걸 말해줄 뿐이다. 이 군더더기 같은 말들이, 우회의 흔적이라는 게 부끄럽지 않을 때는 언제에나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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