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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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읽고

서울대학교 국문과 오강현


Ⅰ. 들어가며

최장집 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의 개정판은 “나는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가 질적으로 나빠졌다고 본다.”(9쪽)라는 다소 도발적인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제1장에서 처음 말하듯 이 책 전체를 요약하면 중심내용은 “한국 민주주의는 위기라는 것이다.”(19쪽) 한국이란 곳이 그렇게 비관적으로 볼 만큼 민주주의가 발전하지 못한 곳인가? 1987년 학생들과 민중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얻어진 민주주의는 지금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주는가? 필자는 민주화의 혜택만을 누리면서 자란 세대로 이전의 열사들이 보냈던 인고의 시간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2008년 MB정권이 집권한 이후, 조금은 이전의 아픔과 슬픔에 대해서 나눌 수 있을 듯하다. “법과 원칙” 앞에 우리는 우리가 쟁취했던 민주주의를 서서히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현 정권이 내세우는 “법과 원칙”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주 불명확하다. 최근 ‘미디어법’과 관련한 헌재의 판결은 과연 “법과 원칙”이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우리는 오히려 “법과 원칙”부터 빼앗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민주주의는 절차적 수준에서 또는 제도와 규칙을 준거로 한 '최소정의'(minimalist conception of democracy)적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는 정치체제가 아니라, 사회의 성원들이 정치참여를 통해 민주주의의 가치를 습득하고, 다른 한편 정치적 제도와 절차가 민주적 정치문화에 뒷받침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사회구성원들이 광범하게 지배에 참여하는 사회적 이상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80쪽)

민주주의라는 것은 이렇게 최소 정의적 차원의 것을 넘어서야 한다. 그리고 분명 실질적인 민주주의는 절차 이상의 그 무엇을 요구로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사태는 민주주의의 가장 기초가 되는 ‘최소정의’마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최장집 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2002년에 처음 출간된 이래로 스테디셀러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Ⅱ. 1부와 2부 - 문제점과 보수적 민주주의의 기원과 갈등

이 책의 부제는 「한국 민주주의의 보수적 기원과 위기」이다. 제1장에서는 위기의 원인을 우선 낮은 투표율과 참여의 위기에서 찾는다. 그런데 낮은 투표율과 참여의 위기는 어디서 기원하는 것일까? 유신 정권 시절의 독재 하에서 높은 투표율과 대비되는 오늘의 현실은 과연 우리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누릴 능력이 부족한 시민들이란 말인가? 이에 저자는 저러한 위기의 원인을 ‘매우 협애한 이념적 대표성’(23쪽)에서 찾는다. 시민들은 진보와 중도, 그리고 보수 등 다양한 성향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과는, 실제 사회에서 오로지 보수와 극우만이 대표된다. 그리고 보수와 극우가 대표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냉전반공주의다. 냉전반공주의 아래서 한국의 기득권은 철저한 레드콤플렉스에 빠져 살아간다. 오른쪽에서 벗어나는 것은 ‘빨갱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진 채 원색전인 비난의 대상이 될 뿐이다. 냉전반공주의의 이념적 협애성은 더 이상 노동자와 서민들의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이 되지 못함을 의미한다. 이렇게 한쪽의 의견만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갈등’과 ‘균열’고 같은 것들은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신문들을 살펴보면 심심치 않게, ‘국민 대통합 필요’, ‘국론 분열 심각’과 같은 말들을 볼 수 있다. 저자가 인용하는 립셋에 따르면 갈등과 컨센서스가 사회의 기본이고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민주주의에 무감각한 채로 하나의 이념만을 인정하는 ‘국민 통합’이 정말로 대단한 가치인 양 받들게 된다. 그리고 지금도 재벌과 결탁하고 정부와 결탁한 거대 신문사들이 배포하는 협애한 이데올로기를 주입받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조숙하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그 원인을 냉전과 외삽된 민주주의에서 찾는다. 냉전은 남과 북이 지역 별로 극단의 이념을 각각 독점하는 현상을 가져왔다. 그리고 냉전은 과대 성장 국가를 강화시키는데, 조선의 유교 문화와 일제의 식민 통치는 한국이 과대한 국가 권력을 가지는 원인을 제공했다. 그 외에도 저자는 냉전이 권력의 초집중과 보수 양당체제, 私人的 권위주의를 가져왔다고 본다.

3장에서 독특한 점은 박정희 정권에 대한 평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박정희 정권은 세계의 여러 독재 정권과 달리 상당히 역설적인 상황을 연출한 정권이라 평가한다. 첫 번째 한국 사회의 근대화를 통해 산업화라는 성공 신화를 연출했고, 둘째 권위주의를 지속 가능한 체제로 만들지 못하여 민주주의로의 탈출 경로를 열었던 것이다.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정책을 수행하는 이면에 민주화의 요구를 도외시하였고, 결국은 시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의 불씨를 지핀 것이다.

저자는 외국의 여러 사례를 들면서 박정희 시대의 산업화와 정치체제에 대해서 설명하려 한다. 오도넬의 “관료적 권위주의”와 립셋과 아담 쉐보르스키의 “근대화론”, 마지막으로 배링턴 무어의 “사회적 기원론”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론은 우리의 현실에 잘 맞지 않는 한계가 있다. 결국 한국에 있어서 적절한 설명은 “발전주의와 군사주의의 결합”이 “발전모델의 핵심이 되는 행동원리이자 사고정향이며 에토스”(98쪽)라고 밝힌다.

박정희 정권의 역설적 상황에 의해서 분출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주도하는 자는 누구인가? 그것에 대해서 저자는 확실히 부르주아는 아님을 밝힌다. 제도권의 야당에 의한 것도 아니며 학생에 의한 민주화라는 것이 우리의 특수성임을 밝힌다. 그러면서 배링턴 무어가 ‘부르지아지 없이 민주주의 없다.’라고 한 것에 대비되게 한국의 경우 ‘운동 없이 민주화 없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박정희 정권의 산업화는 한국의 민주주의에 무엇을 남겼는지 언급한다. 권위주의적 산업화는 우선 재벌문제를 남겨두었다. 삼성의 문제에서 살펴 볼 수 있듯이 ‘삼성’은 이미 국가의 권력을 넘어선 듯하다. 삼성이 망하면 국가가 망할 것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논리는 귀가 따갑도록 듣는다. 이러한 재벌의 문제는 권위주의 산업화의 골치 아픈 사생아라 할 수 있다. 둘째 관료적 권위주의를 남겼다. 셋째 권위주의적 노동통제를 남겼다. 이러한 노동 통제는 2009년에도 쌍용사태와 같은 비극을 남긴 것이다. 마지막으로 언론과 권력의 유착이다. 거대 언론사들의 권력은 거대 재벌의 그것이 부럽지 않다. 그리고 거대 언론과 거대 재벌은 그들끼리 강력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4장에서 저자는 민주화가 보수적으로 종결되었다고 말한다. 학생에 의해 민주화가 되었고, 그들이 주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의견은 민주화에 반영이 되지 못했다. 학생들은 주류 정치권에 발을 들이지 못했고, 실질적인 민주화에 대한 합의는 기존의 정치권에 있던 주류 정치인들의 협약에 의해서 성사되었다. 8인 회의로 대표되는 협약은 운동의 배제를 가져왔고,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지 못했다. 그 회의는 정치적 권력을 어떻게 재분배 하느냐의 문제에 초점이 있었다. 이것이 보수적 민주화의 종결을 보여주게 되었다.

Ⅲ. 3부 - 민주화 이후의 국가, 시장, 사회 그리고 결론

제3부에서는 민주화 이후의 한국사회가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보여준다. 3부에서부터는 이전의 분석과는 달리 행위자 중심의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1부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2부에서 구조적인 측면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를 파악했다면, 3부에서는 그렇게 파악이 된 민주주의 하에서 각 주체들은 어떻게 변화했으며,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선 5장에서 저자는 국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왜 국가가 중요하며, 국가의 무엇이 잘못인지를 질문한다. 그리고 국가의 잘못을 무력함으로 판단하고, 무엇이 국가를 무력하게 했는가를 살펴본다. 그에 대한 답으로 국가를 무력하게 한 첫 번째 요인으로 행정 관료에 포획된 정치세력을 꼽는다. 두 번째로는 사회적 기반이 없는 야당의 문제로 책임성의 부재를 든다. 세 번째는 허약한 대통령이다. 직관적으로 생각해볼 때 조금은 의아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대통령의 권위주의가 독립변수가 아니라 종속변수로, 대통령의 약함이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여러 요인의 결과물로 대통령이 약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대통령이 권위적이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들었고, 그것이 대통령의 약함을 의미한다. 진정한 강함이 있다면 권위적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네 번째로 엘리트의 동심원적 중첩을 지적한다. 이는 다원성의 부족을 보여주는데, 이런 초집화의 원인으로 가치구조의 획일화, 권위주의적 산업화, 승자독식 구조 등을 든다.

6장에서는 민주화 이후의 시장의 모습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민주화와 세계화는 과연 한국의 시장을 변화시켰는가? 이에 대해 저자는 상당히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그리고 그 원인으로 김영삼 정권과 김대중 정부의 무능을 든다. 한국의 시장의 상황을 설명하면서(재벌 중심, 국가 주도성, 노동의 배제 등)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서 설명한다. 하지만 세계화와 민주화라는 좋은 기회를 맞은 정권은 시장을 개혁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원인을 규명한 뒤 개혁의 실패가 우리에게 남긴 것이 무엇인지를 살핀다. 개혁 실패의 유산으로 신자유주의의 확산, 노사 관계의 인식 변화의 지체, 그리고 불평등의 심화와 하층 집단의 소외를 들 수 있다.

7장에서는 우선 민주주의와 시민의 개념에 대해서 설명을 한다. 서양과 다르게 형성된 한국에서의 시민의 개념을 ‘약한 자유주의적 내용과 강한 민주주의적 전통’(219쪽)으로 요약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의 시민사회는 한국의 민주주의에 기여하고 있지 못함을 설명하고 있다. 그 이유로 대안 이념 창출의 실패, 시민사회 내의 분열, 제도화 부족으로 인한 참여기제의 협소함, 비정치적 또는 반정치적 이슈에 천착하는 현상 등을 들고 있다. 시민사회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시민사회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지적한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간헐적으로 분출하는 열정에 의존하는 시민사회를 꼬집으면서, ‘시민사회는 공익창출의 안정적 기반으로 기능하지 못하며 그에 따라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가 가속화되고 있다’고 평가한다.(237쪽)

결론인 마지막 8장에서는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치사회와 정당이 제대로 작동해야 함을 역설한다. 유권자들의 투표가 정치 엘리트를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가운데 정당체제가 돌아가야 한다고 설명한다. 4년에 한번, 또는 5년에 한번만 시민으로서 주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감시가 필요하며 그렇게 되면 정당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으며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다.

Ⅳ. 나가며 - 정리와 책의 한계

한국의 민주화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그리고 저자는 이제까지 어떻게 민주화의 길이 왜곡되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앞으로 어떠한 길을 밟아가야 할지도 보여준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상당한 스테디셀러이다. 2002년의 초판과 2005년의 개정판 이후에도 지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저자가 제기하는 문제가 아직 우리에게 유효함을 갖기 때문이다. 이 책이 인기를 끄는 또 다른 이유는 명쾌한 책의 구조와 문장의 명료함이라 생각된다. 정치라면 따분하고 어렵게 생각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인의 분석과 판단, 그리고 대안의 제시는 너무나 명쾌하다. 전체적 구성 역시 물 흐르듯 넘어간다. 물론 논의의 전제가 대의제 민주주의기 때문에 영역 외의 민주주의에서 설명하자면 많은 한계점이 지적될 것이다. 그러나 대의제 민주주의가 우리의 현실이고, 그것이 현실에서 가장 유용한 민주주의라는 것이 어느 정도 판명이 난 지금 그런 문제는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 있고, 시민들의 교양서적 또는 전공서적으로서도 매우 훌륭한 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세부적인 내용면에서 MB정권 이후 관심이 증폭된 CEO형 대통령에 대한 언급은 2002년에 나온 책임에도 불구하고 인상적이다. 175~176쪽에 걸쳐서 나오는 CEO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는 현재 이야기되는 담론과 너무나 닮아 있다. CEO대통령의 한계가 어떤 것인지는 MB정권 초기부터 무수히 들을 수 있었고, 그 내용은 이미 2002년에도 예견이 된 불상사였다.

이 책에 아쉬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민주화 과정에서 박정희 정권에 대한 평가이다. “이전 민주주의 정부에서 볼 수 없었던 정부의 높은 수행능력을 과시할 수 있었고 그것이 압도적 지지를 획득한 것이기 때문이다.”(104쪽) 이와 같이 책을 넘기다 보면 박정희 정권의 비민주성에 대해 지적하면서도 성과에 대한 칭찬을 볼 수 있다. 물론 어느 정도 박정희 정권의 능력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산업화의 원인은 다른 측면에서 훨씬 더 크게 찾아볼 수 있다. 경제원론이나 거시경제와 같은 기본적인 경제학 강의를 들으면 경제 성장모형을 배우게 된다. 그 이론을 보면 경제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은 기술진보, 출산율의 감소, 저축률의 증가,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 등을 들 수 있다. 당시 60~70년대 한국의 현실에 있어서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는 엄청난 교육열의 결과였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방법으로 교육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자식이 고매한 학문을 하여 공자, 맹자를 익히는 것을 보고 즐거워한 것이 아니라 자신과 같이 힘든 삶을 살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힘들게 벌어서 많은 것을 교육에 투자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교육열은 인적자본을 우수하게 만들었고, 좁은 땅에서 날 것이라고는 사람밖에 없다는 말처럼 우수한 인재가 되어 경제성장의 역군이 되었다. 그리고 출산율은 정부의 산아제한 정책이라기보다는 사회가 변화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저축의 증가 역시 열심히 벌어서 저축을 해야 자식이 대학을 가면 등록금을 댈 수 있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높은 저축률을 보였다. 그렇게 은행에 저축된 돈은 기업에 대출이 되었고 경제발전으로 연결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기술 진보 역시 높은 교육열에 의해 길러진 뛰어난 인재들이 이루어낸 하나의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서민들의 노력이 더욱 산업화를 촉진시켰다고 할 수 있다. 산업화의 역군이라면서 직접 몸으로 일을 하는 것만을 서민들이 한 것이 아니라, 실제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되는 저런 행동들을 우연 또는 필연으로 하게 된 것이다.

민주화에 의해 재벌체제가 강화되었다는 것(199쪽)에서 비판이 가해질 수 있다. 민주화 이후에 재벌이 강화된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민주화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상관관계로 파악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인과관계로 파악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김대중 정부가 재벌의 개혁에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민주화 때문이 아니라 IMF사태와 세계화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1997년 이후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한국을 휩쓸면서 지니 계수는 급격히 악화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관성적으로 권위주의 체제 이후 눈 덮인 산에서 굴러 내려오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 재벌이 더 이상 멈추지 못하고 계속 강화되는 것이 민주화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또 아쉬운 점은 현대의 젊은 세대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에 대한 지적이다. 물론 저자는 이념적 협애성으로 그들이 대표되지 못함을 원인으로 보고 있지만,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대학가를 보면 요즘 한창 총학 선거가 진행 중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관심하다. 실제 선거와 같이 투표소를 찾아가야 하는 것도 아님에도, 투표율이 50퍼센트가 되지 않아서 연장투표를 하는 것은 몇 년째다. 이것은 또 다른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과연 그들이 정치에 그들의 대표성을 충족시켜줄 정당이 나타난다고 해서 선거장으로 다시 나갈 것인가? 개인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상당히 회의적이라고 본다. 노무현 현상과 정몽준 현상을 예로 들면서 변화의 가능성이 나타나면 존재를 드라마틱하게 드러낸다고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2002년 대선에도 역시나 젊은 층의 투표율은 나이 많은 사람들의 투표율에 한참 마지지 못했다. 게다가 그때는 진보당이라 할 수 있는 ‘민주노동당’도 큰 두각을 내면서 이전과 같은 ‘이념적 협애성’을 보인 것은 아니었다. 이런 점들을 보면 대표성의 문제 외에 다른 문제가 민주주의의 위기의 원인으로 더 크게 다가올 수도 있겠다.

사람들이 MB정권 이후 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관심을 가진 것은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어렵게 쟁취를 하고 너무 쉽게 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시민들이 그렇게 어리석은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깨닫는 것이 꼭 사후 약방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씁쓸함이 가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법과 원칙’ 아래 민주주의가 많이 퇴보했다. 민주주의를 지켜야할 ‘법과 원칙’이 아이러니하게도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자들의 무기가 되어 우리에게 돌아왔다. 아직은 늦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 늦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늦지 않았다는 것은 늦기 전에 해야 할 것이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한국의 민주주의의 길을 가르쳐 주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다시 봐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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