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에 문제를 제기하다

학부생부문 다른 서평들

구조에 문제를 제기하다

우석훈・박권일, 『88만원 세대』, (레디앙, 2006)

서울대학교 소비자아동학부 양수연


대학원 경쟁률이 예년에 비해 훨씬 높은 수준이다. 학교 측에서는 요즘 경제 사정으로 취업 시장이 악화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청년 백수, 88만원 세대, 비정규직, 대학교 5학년 등이 이제는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20대 초반이라면 저 단어들을 향해 점차 나아가고 있는 중이겠고, 20대 중후반이라면 저 단어들, 또는 그 사이 어디쯤인가에 서 있을 것이다. 물론 운이 좋은 몇몇 사람은 한전과 같은 공기업,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 철밥통 공무원인 5급 사무관과 같은 ‘단단한 직장’의 행운을 거머쥐었을 것이다. 하지만 20대를 대표하는 표정이 존재한다면 울상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행운아들의 웃음이 20대의 표정을 중화시키기엔 지금 대다수의 20대가 가지고 있는 얼굴의 그늘이 너무 짙다.

저자는 지금의 20대를 ‘88만원 세대’라고 규정하고 있다. 먼저 그들 중 대부분은 이미 인구의 800만을 넘어선 비정규직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 보았다. 비정규직의 평균 임금인 119만원에 20대 급여의 평균비율인 74%를 곱하면 88만원 정도가 된다. 이것이 그들의 이름이 된 것이다. ‘88만원 세대’의 아버지 세대, 혹은 삼촌 세대는 자신들의 20대 시절은 지금과 달랐다고 회상한다. 정치적 상황으로 휴교령이 내려지기도 했고, 선동열 방어율 수준의 학점을 찍으면서도 학교생활은 술과 낭만과 함께였다. 그래도 취업은 척척 잘만 됐으며 지금 사회에서 각계각층의 최고층 인사가 되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들과 지금의 20대의 삶은 확실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무엇이 이 둘을 다르게 만들었을까?

저자는 지금 우리나라의 20대에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첫째, 빠른 경제성장을 위해 선진국의 제도를 답습하다보니 그 안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고민과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것이 30년 동안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루고 난 뒤 이제야 후유증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이 문제는 구체적으로 ‘세대 내 경쟁’이 ‘세대 간 경쟁’으로 심화된 상황을 말한다. ‘세대 간 경쟁’에서는 이미 사회 기득권을 주도하고 있는 윗세대가 지금의 20대보다 더 유리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20대에게 돌아갈 소득을 앗아가는 원인이 된다. 셋째, 이것은 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에 문제점을 알아차리기 쉽지 않고 이를 변화시키려는 여론도 크지 않다. 저자는 이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보았다.

탄탄한 기초가 없이 세워진 구조물에는 균열이 생기게 마련이다. 빠른 경제성장을 위해 간과했던 것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우리 사회에 혼란이 야기됐다. 그 대표적인 예가 IMF이다. IMF는 고속 성장만을 내세우며 달려오던 국가 운영에 큰 충격을 주었다. 위기를 잘 넘기면 더 단단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이 위기를 기회로 살리지 못했다. 살 사람은 살고, 남은 사람은 더욱 키워주는 식으로 경제 회생이 시도되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였다. 중소기업은 더욱 어려워졌고, 자영업자는 몰락했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가 확대되었고 분야별로 특정 기업 몇 개가 주도하는 식으로 독과점이 심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대는 창업을 하거나 중소기업 입사를 선택하는 대신 대기업에 몰리게 되었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는 지금의 20대가 경제 주체가 될 기회를 박탈시켰다. 비정규직이 800만 명이 넘는 상황에서 20대는 힘없는 비정규직 사원일 뿐이고 대기업은 언제든지 그들의 생사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 고용인이 되었다. 그들의 경쟁상대는 이미 사회의 기득권을 단단히 쥐고 있는 이전 세대이기 때문에 세대 간 경쟁에서 20대는 손도 못 쓴 채 지게 되는 것이다.

임금이 적어지고, 정규직 일자리가 줄어들고, 취업이 늦어지고, 결혼이 늦어지는 것이 현 20대의 문제라면, 이 모든 문제는 경제성장으로 풀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그 안에 박혀 있는 더 깊숙한 문제를 끌어올린다.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이 모든 상황을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지금의 20대를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승자 독식 세대’라고 표현한다.

죄수의 딜레마는 게임 이론의 유명한 사례로, 2명이 참가하는 비제로섬 게임의 일종이다. 이 사례는 참가자들이 서로 더욱 불리한 상황을 선택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말 그대로 딜레마인 것이다. 이 게임에서 죄수는 상대방의 결과는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최대화한다는 가정 하에 움직이게 된다. 이때 언제나 협동보다는 배신을 통해 더 많은 이익을 얻게 되므로 모든 참가자는 배신을 선택하게 된다. 승자 독식 제도는 주별로 직접투표를 통해 가장 많은 표를 얻은 후보가 해당 주에 배분된 선거인단을 모두 차지하는 미국의 독특한 선거제도를 말한다. 영어로는 ‘Winner takes all’이다.

그렇다면 88만원 세대는 왜 이러한 죄수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 것일까? 또한 그들은 왜 승자 독식 제도를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일까?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그들이 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둘째, 사회적으로 약자를 배려하는 구조가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막 10대를 벗어나 사회에 입문하는 20대는 약자에 속한다. 대학생의 경우, 소득은 없는데 혼자서는 절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등록금은 비싸고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해도 최저임금은 시간당 3천원을 밑돌고 있다. 노동자나 농민에 관련된 문제는 사회적으로도 어느 정도 논의가 되었고 부분적이나마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노하우가 축적되어있지만, 20대의 문제를 다루는 한국사회의 태도는 매우 미숙하고 초보적이다. 우리나라의 자본주의 운영방식이 서양의 것을 그대로 본뜬 것이기 때문이다. 즉, 껍데기만 들여왔기 때문에 그 안에서 다루어졌던 여러 가지 다양한 갈등과 문제점들이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p. 61).

우리나라의 20대 청년들도 여느 시대, 여느 국가의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일을 하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삶을 일궈나가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독립도, 동거생활도 쉽지 않은 한국사회에서 이들은 결국 안정된 부모의 품을 선택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처음부터 구조가 잘못된 것이다. 이들이 절망하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살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우리나라를 제외한 모든 선진국들이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 사회 시스템이다.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에 갖추기 시작해야 했던 것들을 지금의 기성세대는 준비해주지 않았고, 그래서 지금의 청년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문제시되는 이유는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지금의 대학 입시 제도를 그 예로 들 수가 있다. 모두들 수능 혹은 내신 성적을 통해 서열화 되어있는 우리나라 대학교에 입학하려고 구슬땀을 흘리며 공부하고 있다. 그러나 수능이라는 제도가 수많은 제도 중에서 가장 타당한 것인가? 그리고 대학은 꼭 서열화 되어있어야 하는가? 혹은 대학은 꼭 가야만 하는가? 지금 우리가 당연시 여기고 있는 일들이 과연 당연한 일인가에 대해 한번쯤 의문을 제기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는 복잡하고 매우 여러 가지 요소가 얽혀있어 변화시키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조금만 제도를 바꿔도 매우 다른 결과를 도출할 수 있고 이것은 때로 투자에 비해 매우 효율적이다. 최인철 교수는 『프레임』에서 사회 구조에 따라 장기이식율이 달라지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최인철, 『프레임』, 21세기북스, 2007, p. 26~28).

같은 유럽 내에서 실제 장기기증에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이것은 나라마다 장기이식에 필요한 의료 시설이나 경제 수준, 교육 수준, 종교 차이 등을 감안하더라도 눈에 띄는 사실이다. 장기기증 비율이 높은 국가들의 경우 정책적으로 모든 국민이 자동적으로 장기기증자가 된다. 즉, 기증 비율이 높은 나라는 아무 액션을 취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장기기증자가 되고, 기증 비율이 낮은 나라에서는 특별한 액션을 취해야만 장기기증자가 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정책을 각각 ‘탈퇴하기’와 ‘가입하기’라고 한다. 장기기증에 대해 가입하기 정책을 취하는 나라에서는 아무리 장기기증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캠페인과 교육을 실시한다 해도 효과가 크지 않다. 그러나 탈퇴하기 정책을 실시하는 나라에서는 장기기증 캠페인과 교육을 따로 실시하지 않아도 월등히 많은 사람들이 장기기증을 하게 된다.

이것을 재해석해보면 유럽의 몇몇 국가의 국민들만이 착하고 양심적이어서 장기기증을 선호하고, 다른 국가의 국민들은 나쁘고 이기적이어서 그것을 반대하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지 시스템의 차이가 이와 같이 큰 차이를 불러온 것이다. 이것을 우리 사회에 적용시킬 수도 있다. 대한민국의 20대가 특별히 게으르고 자립 노력이 없고 부모들의 치맛바람이 세서 늦게까지 독립을 못하고, 비정규직 일자리를 맴도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 문제로 이러한 현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렇듯 사회 구조적인 문제는 원인을 찾아내기까지 오해의 소지가 많지만 일단 찾아내면 핵심인 경우가 많고, 해결이 한결 쉬워진다. 따라서 좋은 사회 구조를 만들려는 노력은 중요하다. 저자는 이러한 이유로 세대 간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아직 사회에서 약자에 불과한 88만원 세대를 배려해줄 수 있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과연 이런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와 88만원 세대가 ‘죄수의 딜레마’에서 빠져나와 ‘승자독식제도’를 버리게 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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