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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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평전

조은아


인간으로서 당연히 보장 받아야 할 권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을 수밖에 없었던 전태일. 그를 생각하면 경외감과 더불어 안타까운 마음이 가슴을 억누른다. 그러나 <전태일 평전>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왜 그가 분신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취했어야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다고 무슨 일이 해결될 것 같지도 않았고 다른 방법도 있을 것 같은데 굳이 자신의 몸을 불사를 필요는 없었던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죽음을 내세워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려 한다는 게 어찌 보면 무모하고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했다. 사람은 죽으면 모두 끝이라고들 한다. 자신이 죽고 난 다음에 노동권이 보장되고 작업환경이 개선되어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오히려 계속 투쟁할 자신이 없는 나약한 사람들이 한 순간의 열기에 판단력을 잃고 사람들의 이목이나 끌려고 수작한다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이런 내 생각을 사후 세계에 있는 전태일이 알았다면 얼마나 애통해 할지…… 사람들은 믿기 힘들만큼 끔찍한 평화시장의 노동현장을 알게 된 뒤에도 놀란 표정만 지어 보일 뿐 노동자들을 도와줄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노동자들도 눈과 코와 입을 가지고 즐거울 때 웃고, 억울할 때 화를 내며, 슬플 때 울 수 있는 똑 같은 인간인데도 그들의 문제에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려고 하지 않았다. 호소와 진정만으로는 꽝꽝 얼어버린 기업주와 정부, 지식인과 종교인의 마음을 두드릴 수 없었다. 정말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란 것이 존재했던 것이다. 전태일은 비인간적인 삶을 살고 있는 동료들, 더 나아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계로 전락해 버린 불쌍한 인류를 위해 제 한몸 희생하겠다는 의지를 극단적으로 또 분명하게 보여준 혁명가였다. 그런 그를 향해 죽을 필요가 있었느냐는 물음은 그가 한때 우산 장사를 했을 때 그를 향해 “네가 그토록 가난한 것은 너의 부도덕함 때문이다.” 라고 윽박질렀던 한 여자의 말처럼 비열한 것이었다. 부한 환경에 속해 있었던 그 여자가 자신의 안락한 생활을 기준으로 전태일을 바라보면서 그에게 온갖 죄를 뒤집어씌웠던 것처럼 나 또한 그 당시의 경제적인 상황과 착취구조를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안락한 현실에 안주하면서, 온 몸을 다해 인간다운 권리를 부르짖은 그를 오해했던 것이다. 그가 분신자살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노동자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노동권 획득은 그가 노동운동에 뛰어들게 만든 표면적인 이유, 1차적인 이유는 될 수 있으나 그를 분신자살로까지 몰고 갈 수는 없다. 그가 자신을 포기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자신이 아닌, 주위에 있던 어린 소녀들, 미취학 청소년들에게 인간으로서의 권리,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부여해주기 위함이었다. 다른 사람을 향한 그의 따뜻한 마음이 그의 희생정신을 불태웠던 것이다. 전태일, 그는 스물 둘의 청년운동가로서 침묵하는 사회에 휘황찬란한 번개를 날렸고 하루 하루 단조로운 삶에 길들여져 있는 나에게 돌을 던졌다.

그 당시의 노동 작업 환경은 그 누구라도 울분을 터트릴 만큼 끔직했다. 고작 14살의 어린아이들, 또는 학교에서 한창 학구열에 불타올라야 할 나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빛도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다락방에 허리도 곧게 펴지 못하고 일해야 했다. 환기구도 없는 답답하게 꽉 막힌 작업장에서는 화장실 가는 것조차 눈치를 받아야 했으며 기본적인 상수도 시설, 화장실도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아 세수 한번 하는 것도 변변치 못했다. 그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공장주에게 노동자들은 기계의 부품, 아니 고장 나면 고쳐주고 녹슬지 말라고 반들반들 닦아주는 기계 부품보다도 못한 존재가 바로 노동자들이었다. 예전 농경시대에 농사의 주요 자원이었던 소나 돼지 같은 가축처럼 그들은 노동자들을 말 못하는 짐승처럼 취급하고 그들 자신의 잇속만 챙기기에 바빴다. 하루에 14시간 노동이라니. 그것도 작업 환경이 지상의 지옥 같은 곳에서.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잠깐 짬을 내어 밥을 먹고 또 잠깐 짬을 내어 잠을 자는 생활이 얼마나 끔찍할 것인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스스로 하고 싶은 일도 아니고 단순하지만 육체적, 정신적으로는 매우 고달픈 작업을 하면서 하루를 보낸 뒤 자신의 오늘, 그리고 어제와 내일을 생각해 보는 노동자들 마음은 어땠을까. 이런 생각이 좌절감과 절망만 주기 때문에 아예 생각조차 하려고 하지 않는 노동자들은 노동에서 소외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 자신의 삶으로부터도 소외 당하기 시작했다. 전태일의 1967년 3월 일기를 보면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 당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깨닫게 만드는 내용이 있다.

무의미하게. 내가 아는 방법 그대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이외에는 무아지경이다. 아니 내가 하고 있는 일 자체도 순서대로, 지금 이 순간에 해야 될 행동만이 질서정연하게 자동적으로 행하여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의 나는 일의 방관자나 다름없다. 내 육신이 일을 하고…….. 누가 잘랐을까? 이렇게 생각이 갈 때에는 역시 내가 잘랐다. 왜 이렇게 의욕이 없는 일을 하고 있는지 나 자신도 모르겠다…… (p.130)

학교에 가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명문대에 진학하고 싶은 이유는 좋은 직장, 혹은 원하는 직장에 취직하고 싶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날의 대학은 취업 준비를 하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수많은 학생들이 대학 다니면서 취업 걱정을 하고 있다. 여기서 이러한 현상에 대한 옳고 그름을 따지려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주목하고자 하는 바는 직업이 취업 전에도 깊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평화시장의 노동자들에게는 이토록 중요한 직업이 끔찍한 고문처럼 여겨졌다.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소중한 곳이 되어야 할 작업장은 지상 위의 지옥처럼 탈출하고만 싶은 곳이었다. 자기 스스로가 일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육체가, 길들여진 감각이 일한다는 건 참 슬픈 일이다. 노동하는 자신을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도 참 안타까운 일이다. 마르크스가 말한 소외라는 것이 무엇인지 절감할 수 있었다.

대부분 지배자 계층은 소수이고 피지배자 계층은 다수이다. 마르크스도 이상하게 여겼듯이, 나도 이상해 보였다. 수십, 수백 명이 고작 몇 명의 공장주나 업주를 당해내지 못하다니,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자본주의 경제가 다 그렇다. 다수의 지배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기 어렵다. 소수의 다수에 대한 지배가 매끄럽게 이루어질 수 있는 이유는 자본주의 경제 구조 그 자체에 있는 것이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란 말이 있다. 노동자들은 더러워서 피하고 싶었으나 무서워서 피할 수 없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하루 벌어먹고 사는 인생이었다. 그날 일하지 못하면 바로 굶어야 했기에 일자리가 급하다. 반면, 업주들은 배부른 배를 툭툭 쳐가며 여유를 부릴 수 있다. 싫다는 놈 나가도 원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공급은 한정되어 있는데 수요는 많았기 때문에 업주에게는 노동자들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지만 노동자들은 고분고분 업주들의 눈치나 보면서 일자리를 얻거나 지켜내도록 노력해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불만이 있어도 입밖에 내지 못했으며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가슴 속으로 울분을 삭여야 했다. 그러나 전태일은 분분이 일어나서 억울한 건 억울하다고 잘못된 건 잘못되었다고 소리 내어 말하였다. 그것도 자기 자신의 고달픔보다 그 주위의 어린 시공들을 보면서 그들에게 인간다운 권리를 되찾아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의 인격이 드러나는 행동에 몇 번이나 감탄을 했는지 모른다. 어린 시공들이 굶주리는 게 안타까워 그들에게 자신의 차비로 풀빵을 사주고 새벽녘 걸어서 자신의 집까지 돌아가는가 하면, 너무 힘들어 보이는 시공은 재우고 그의 일감을 자신이 대신 해주기도 했다. 더군다나 7천원의 월급을 받으며 미싱사로 일하고 있다가 재단사가 되기 위해 더 적은 월급의 재단보조공부터 다시 시작했던 일은 정말 믿기 힘들 정도로 대단한 일이었다. 단지 자신이 재단사가 되면 여공들의 편의를 조금이라도 더 봐줄 수 있을 것 같아 그런 힘든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자기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할 줄 알았던 전태일은 그들을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까지 하면서 노동 운동에 앞장선다. 그러나 정작 노동자들이 그를 따르지 않는다. 그들 자신이 일을 하면서 병을 얻고 제대로 된 생활을 하지 못하면서 자신들의 환경을 바꾸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다.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식민지인들이 그들 스스로 백인들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을 보았다. 물론, 몇몇은 백인들이 지 멋대로 명명한 ‘흑인성’에 대해 반발하고 울분을 터트리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수많은 흑인들이 백인들의 세계에 편입되기를 희망하면서 백인 흉내를 내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노예의식’은 자신이 아픈 것도 느끼지 못하도록 만들며 그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는 판단력을 앗아가 버린다. 피해자들 스스로가 자신의 피해를 정당화 하면 다른 어떤 사람이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겠는가? 그런데 이 노예의식은 근본적으로는 사회와 그 사회의 경제 구조가 조장하고 있기 때문에 벗어나기가 어렵다.

철조망, 그것은 법이다. 질서이다. 규범이며 도덕이며 훈계이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억압이다. 겹겹이 철조망을 둘러치고 그 속에서 무엇인가를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은, 철조망을 넘어서려는 사람을 짓밟고 그 쓰러진 얼굴 위에다 침을 뱉는다. 쓰러져 짓밟힌 인간의 이지러진 얼굴 위로 고통스런 죄의식의 올가미가 덮어 씌워진다. 그리하여 철조망을 넘는 과정은 무뢰한으로 전락하는 과정, 법과 질서의 테두리 밖으로 고독하게 추방되는 과정, 양심과 인륜을 박탈당한 비인간으로 밀려나가는 과정이다. (p.45)

효율성을 강조하는 사회에서는 법과 규칙으로도 효율성을 보장하고 있다. 인간의 권리, 평등은 차후 문제이다. 군대를 보면 이런 풍조의 일부분을 엿볼 수 있다. 전시 상황에서는 효율성이 곧 목숨이라는 무시무시한 이유를 거들먹거리면서 상명하달, 명령불복종은 반역이라는 논리가 당연시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군대도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알게 모르게 법과 질서라는 이름으로 인간을 억압하는 사회 구조는 여전히 존재한다. 은희경의 <상속>이라는 소설을 보면 소설 속의 주인공이 일기장에 다음과 같이 적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교양이란 남이 옳다고 하는 가치를 학습하고 남이 좋다고 하는 기능을 익히는 것이다.

그 소설의 ‘딸기 도둑’ 편에서는 착한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스스로 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답답한 규격 안에 자신 뿐만 아니라 남들도 들어가라고 강제한다. 만약 다른 누군가가 그 규격을 거부하고 뛰쳐나가기라도 하면 바로 그에게 악하다고 비난을 퍼부으면서 소외시키는 것이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법이나 질서, 혹은 착하다고 믿었던 행동이 실은 상대방을 편견으로 바라보도록 부추기고 나 자신까지 좁은 우물 안에 갇어두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태일은 중학교 졸업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쓴 글이나 일기를 보면 도저히 배우지 못한 사람이 썼다고는 할 수 없을 만큼 지성인의 고뇌가 느껴진다. 아니, 지성인일수록 깨달을 수 없었던 사실을 전태일은 알고 있었다. 그는 노동자가 억압 받고 있는 현실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도 똑똑히 알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자본주의 시대는 인간을 물질화한다. 성실했던 아버지를 자신의 감정조차 조절하지 못하는 폭군으로 만들고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못하는 업주를 생산해내고 인간답지 못한 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이 억압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노동자를 배출한다. 지금은 어떠한가? 자신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부르짖으면서 죽어간 전태일의 마지막 소망이 이루어졌는가? 아니다. 자유로운 이윤 추구라는 목적 아래 모든 것이 상품화.물질화 되고 있다. 그래도 나는 현재의 삶을 다행으로 여긴다. 내가 사는 이곳이 최소한 먼지를 들어 마시고 한숨을 내쉬는 곳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일을 기대한다는 것, 내일은 또 다른 내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이처럼 고맙게 느껴진 적은 없을 것이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를 보면서 처음 부분에 그가 우산을 팔면서 수모를 받아야 했던 그 장면, 내가 서론에서 언급한 부분이 나와서 놀랬다. 시나리오 작가도 부족함 없이 자란 귀부인이 전태일에게 당치도 않은 죄를 뒤집어씌웠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었나 보다. 정말 아름다웠던, 그리고 지금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언제까지나 내 가슴 속에서 붉은 피를 철철 흘려가며 꽃을 피운 장미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에게 박노해 시인의 ‘그리운 사람’이라는 시를 바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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