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잔치는 끝나지 않았다
학부생부문 3등작
사랑의 잔치는 끝나지 않았다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성과힘, 2000
검은 짐승
1. 序
해가 늦게 뜨는 요즘 아침, 일찍 일어나 어둑어둑한 찬바람을 맞으며 사무실로 올라간다. 사무실에 가면 우선 해야 하는 일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보지 않을 것 같은 세 회사의 신문을 배포하는 일. 신문을 돌리는 와중에 우연히 눈에 들어오는 고딕체 헤드라인.
“지나친 소음은 공무집행 방해”
순간 멈칫한다. ‘이건 무슨 일이지? 그 사람들이 무리한 걸 요구했나?’ 그리고 이내 ‘너무하다.’라고 생각한다. 최소한의 삶에 대한 절규조차 ‘소음’으로 치부하는 사회. 만약 ‘점잖게’ 말했다면 ‘소음’이라는 말라 비틀어진 단어 대신 또 어떤 불순한 단어가 붙었을까.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어느덧 300일이 지났다. 그때 무엇을 하고 있었나 생각해 본다. 용산참사 소식을 접했을 즈음 시험공부와 당분간 자주 못 볼 친구와의 만남으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당시 내게는 사랑과 공부, 공부와 사랑, 오직 그 두 가지만이 중요했었다. 아무리 신문과 방송에서 떠들어댄다고 해도 다른 이들이 그 소식을 ‘소음’으로 여길 만큼의 여유도, 관심도 없었었다. 그리고 300일이 지난 지금, 내 손에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이 쥐어져 있었다.
『난·쏘·공』을 이제야 집어 들었던 건 1월말 용산참사 당시 내가 보였던 무시함을 뒤늦게 부정하려는 속셈이었을 것이다. 그네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그네들의 고통을 알아주고 그 고통을 함께 져줄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직 내 죄책감과 무심함을 달래기 위해 이 책을 집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내 기대와 요구를 단호히 거절했다. 여러 단편들의 연작(連作)인 『난·쏘·공』을 ‘제대로’ 읽어본 적 없이 대학수능, 논술고사 준비만을 위해 「난·쏘·공」이라는 단편만을 접한 나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서는 「난·쏘·공」단편에 대한 줄거리요약과 여러 번 시점이 변한다는 포인트 외엔 배울 게 없었던 “죽은 교육”도 한몫했겠지만 말이다.
『난·쏘·공』은 단순히 ‘난장이’의 고통과 아픔만을 다룬 소설이 아니었다. 내 온몸에 퍼져있는 세포를 동원하여 『난·쏘·공』을 읽으면서 이 소설은 피억압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많은 이들에게 고스란히 ‘번역’해주는 데 그치는 소설이 아니며, 어설프게 ‘공감’을 사려는 소설도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 내 한낱 죄책감을 위로해 줄 소설이라고 생각했던 건 나의 착각에 불과했다. 『난·쏘·공』은 미치도록 나의 과거와 현재를 붙잡고 늘어지려 했고 내 스스로 유예했던 삶의 무게와 성찰의 짐을 다시금 견뎌내야 한다고 끈질기게 속삭였다.
2. 「뫼비우스의 띠」
2005년 4월 20일 장애차별철폐의 날, 우리는 모두 다리 위에 갇혀 있었다. 거리 시위를 하던 중 경찰들과 대치하는 상황이 발생했던 것이다. 그 당시에 나는 너무나 ‘새내기’답게 흥분하고 분노했다. 내 손에 들려있던 물병은 어느새 던져져 날아가 버렸고,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나오는 험한 말도 내 또래인 전경들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지금 물러나면 평생 지는 삶을 살아야할 것 같았고 그때만큼은 장애인들의 울부짖음과 선배와 동기들이 외치는 간절한 구호만이 진실이었고 전부였다. 상황이 마무리되고 선배와 동기들이 연행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우리가 당한 치욕들이 전부 신문과 방송에서 마치 역사의 한 장면처럼 다뤄질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역사’에 들 수 없는, 당연한 상황이었고 그날 뉴스는 연예인들을 데려다 놓고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축하’할 뿐이었다.
그리고 2년 후 나는 내가 새내기 때 보던 선배의 위치에 서게 되었고 학생회를 시작했다. 굳은 의지로 시작했지만 학생회 활동은 순탄치 못했고 결국 동기들은 전부 군대를 가 버렸고 혼자 남게 되었다. (여기서 풍기는 도덕적 우월감이란!) 그때 그렇게 다들 허무하게 군대를 가버리는 게 두려웠다. 왠지 모르게 군대를 다녀오면 우리들이 했던 고민들과 생각들이 감쪽같이 사라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을까. 여기서 v l하기보다는 내가 3년 동안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겪었던 감정들과 느낌, 고민, 생각들을 차근차근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군대’라는 도피처를 택하는 대신 나는 내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 길을 택했던 것이다. 하지만 2007년 9월 호암교수회관 노동자 연대집회에서 감정이 복받쳐 ‘울컥’하는 내 자신을 보면서 나 스스로 3년 동안 많이 약해졌다라고 느꼈다. 나 스스로가 내 감정을 다룰 줄 몰랐고, 3년 동안 황폐해지고 기력이 많이 빠져버린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나는 어디까지가 바닥인지도 모르는 구덩이에 빠졌고, 무너져 버렸다.
그 후 시간이 흘러가면서 나는 변해버렸다. 변해버렸기 때문에 용산참사 소식을 들었을 때 곧바로 새내기 때 반 차원에서 철거민 투쟁에 연대했던 기억을 바로 떠올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내뱉은 말의 무거움을 견디지 못하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학생회 활동을 할 때는 다같이 함께 외쳤던 구호들을 나는 영원히 좇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이젠 그 구호가 가진 육중한 무게감을 견디지 못하고 내가 내 자신을 배반하지 않을 수 있는 한에서만 말하고 행동했다. 용산참사 100일 집회에 나간다는 친구 M에게는 위험하다며 나가지 말라는 ‘조언’(도대체 이게 무슨 조언?)까지 하며 말이다. 미치도록, 열렬히 사회를 바꾸고 변혁하고 싶었으나 정작 내 자신조차 바꾸지 못했다. 나는 변해버렸지만 근본적으로 내 자신은 바뀌지 않았다. 억압에 대해 저항하고 맞서 싸우려는 영수에게 영호가 “형은 이상주의자야.”라고 딱 잘라 말하듯이 나도 남에게 ‘이상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이고 안쓰럽게 바라보는 영호가 다를 바 없었다.
거대한 사회를 바꾸고자 했지만, 작디작은 내 자신을 바꾸는 일마저도 실패한 이런 상황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을 것이다. 면접을 보러 학교에 왔을 때 우연히 막 선출된 학생회장의 발언을 들으면서 “저런 게 대학생이구나.”라고 생각했었다. 학교에 입학해 아크로 광장에서나 거리에서나 언제나 그분은 내 우상이었다. 하지만 3년이란 시간이 지난 후 그분의 현 사정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대기업에 취직했다는 소문도 있었고 PD를 준비하면서 논술강사로 일한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사실 누구도 입 밖에 함부로 내지 않았던 얘기의 주된 분위기는 그 사람은 변했다는 이야기였다. 그 얘기를 듣고 나서 나는 그분이 변절했다거나 내 우상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거나 실망을 했다거나 하는 종류의 느낌보다는, 내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그렇게 당당해보였고 대단한 사람도 ―비록 내가 꾸며낸 이미지일지라도 ― 골골대는데 나라고 별 수 있나.‘라는 좌절감.
어쩌면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았던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분과 처지가 비슷해 보이는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서, 뫼비우스의 띠 위에 있어 언제가는 만날 수밖에 없는 두 점 같다고 생각했다. 사실 내가 새내기 때부터 지금까지 겪었던 상황들과 그 상황 속에서 느꼈던 자기 배반에 대한 감정과 느낌들은, 그 사람이 이미 겪었던 것과 똑같지 않을까. 나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나쳐간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별로 멀지 않은 시절, 해방과 혁명을 한번이라도 상상해 본적이 있는 대학생들은 모두 이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그래서 20대의 우리들이 마치 ‘뫼비우스의 띠’같다고 생각했다. “평면인 종이를 길쭉한 직사각형으로 오려서 그 양끝을 맞붙이면 안과 겉 양면이 있게 되는데, 이것을 한번 꼬아 양끝을 붙이면 안과 겉을 구별할 수 없는, 즉 한쪽 면만 갖는 곡면”이 뫼비우스의 띠이다. 20대의 우리들이 이 안과 겉을 구별할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결국 어느 편에 설지 결정되어 있지 않는 것처럼 언제나 억압받고 소외받는 자들의 편이 될 수도, 이들의 사정에 무관심해지고 묵묵히 동조하거나, 때로는 스스로 억압에 앞장서는 자들의 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지구는 안과 겉으로, 자본주의 사회는 노동자와 자본가로 구별되지만 20대의 우리들은 이쪽 편인지 저쪽 편인지 구별되지 않는다. 우리가 예전에 억압과 소외 받는 편에 서서 구호를 외쳤던 시절과 고시, 취업, 대학원을 전전긍긍하는 시절이 가지는 차이점은 단지 ‘뫼비우스의 띠’에서 어느 쪽으로도 구별되지 않는 다른 두 지점 같은 것이다. 나의 우상이 지나갔던 자리가 지금 내가 밟고 있는 자리이듯 말이다.
3. ‘사랑’이란 이름의 무기
그렇다면 ‘뫼비우스의 띠’ 같은 존재인 우리는 필연적으로 20대 우리들의 모습을 부정할 수밖에 없고, 결국 자기 자신을 변혁시키는 일은 불가능한가? 이 질문에 답을 마련해주는 작품이 바로 『난·쏘·공』이다. 『난·쏘·공』은 흔히 알려져 있듯이 1970년 한국사회에서 “키는 백십칠 센티미터, 몸무게는 삼십이 킬로그램”인 ‘난장이들’로 대표되는 노동자와 철거민들이 겪는 억압과 고통을 다룬 소설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의미는 ‘난장이들’의 삶을 폭로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이 사회의 대립과 갈등을 뛰어넘으려는데 있다. 흔히들 ― 필자도 그랬지만 ― 저지르는 오류가 『난·쏘·공』은 여러 단편들이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는 점을 간과한다는 점이다. 이 소설은 마냥 철거민, 노동자 편에 서서 그네들이 겪는 고통과 억압을 발화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대립과 갈등이 지니는 파괴성을 인식하고 파괴성을 근본적으로 해결해보려는 의지야말로 『난·쏘·공』의 핵심 문제의식이다.
조세희 소설집 『난·쏘·공』은 총 12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있다. 그중에서도 「뫼비우스의 띠」와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라는 두 단편에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나머지 다른 단편들만으로는 『난·쏘·공』이 ‘난장이들’ 삶을 폭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대립과 갈등 속에서 파괴되고 분열되는 삶과 사회에 대한 고민을 확장시키려는 작가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저 둘을 제외한 나머지 단편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와 자본가의 대립과 갈등, 철거민과 철거민을 내쫓으려는 국가(혹은 기업)의 대립과 갈등을 다루고 있으며, 여기서 노동자이자 철거민으로 대표되는 난장이의 비참한 삶을 폭로한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앞서 언급한 두 작품에선 문제의식을 확장하여 대립과 갈등의 현실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분열되고 편이 갈라지는 삶과 사회를 융해시키고 화해시키려는 작업을 시도한다.
「뫼비우스의 띠」에서 선생은 굴뚝 청소를 한 두 아이 중 한 아이는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내려오고 다른 아이는 그을음 하나 없는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을 때 과연 어느 쪽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인지 질문을 한다. 선생은 전혀 다른 두 가지의 답을 제시하는 데 그중 첫 번째 답으로 깨끗한 얼굴을 한 아이가 ?는다고 대답한다. 왜냐하면 서로의 얼굴을 보고서 얼굴이 새까만 아이는 자기 얼굴이 상대방과 마찬가지로 깨끗하다고 생각할 것이고, 얼굴이 깨끗한 아이는 반대로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타자’를 인식의 출발점으로 삼는 이러한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작품이 바로 「내 그물로 오는 가기소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작품에서는 자본가의 아들 ‘경호’의 관점으로 난장이의 아들 ‘영수’가 악덕 자본가인 경호의 숙부를 살인한 상황을 서술하고 있는데, 여기서 의도된 건 자본가가 ‘노동자’를 통해 어떻게 세계를 인식하는 가라는 점이었을 것이다.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에서는 다른 단편들과 달리 모든 인식과 관점이 뒤바뀐다. 노동자로 대표되는 영수가 보기엔 “그들 옆에 법이 있”었고 반면에 자본가로 대표되는 경호가 보기엔 법은 자본가를 살해한 영수와 같은 “악한 중죄인들에게까지 관대한 법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처럼 법에 대한 인식과 관점을 타자를 경유한 후에야 결정된다. 노동자는 자본가가 자신들에게 행하는 착취와 억압을 토대로 형성되고 자본가도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이 행하는 행위를 토대로 해서 형성된다. 이와 같이 대립되는 ‘타자’를 통한 인식은 왜곡을 낳고 만다. 새까만 얼굴을 한 아이가 자기 얼굴이 깨끗하다고 현실을 ‘왜곡하는 것처럼, 노동자와 자본가의 대립 쌍에서도 현실은 왜곡되고 이로 인해 사회의 분열과 노자 대립은 격화되고 만다.
하지만 작가는 노동자와 자본가가 절대로 해후(邂逅)할 수 없는 평행선을 과감히 거부하는 시도를 보인다.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마지막 부분에서 경호는 영수의 사형이 결정된 후 난장이 부인의 포옹과 공원들의 울음을 지켜보며 뒤늦게 ‘사랑’의 감정을 어렴풋이 느낀다. ‘사랑’을 느낀 경호는 드디어 ‘슬픔’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경호가 ‘노동자’의 편으로 돌아섰다는 뜻은 아니다. 사랑에 대한 감정을 느겼다는 것이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가 세계에선 허용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내일 아무도 모르게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자신을 ‘치료’하려는 자본가의 기질은 근본적으로 변화하진 않았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사랑의 힘으로 인해 자본가로 대표되는 경호에게 존재의 혼란을 안겨 주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경호는 사랑의 힘에 흔들렸고 그랬기에 평행선에 벗어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립과 갈등으로 얼룩진 세계, 노동자와 자본가가 팽팽히 평행선을 달리는 세계에 대해 작가는 ‘사랑’의 미학으로 극복하고자 했던 것이다.
‘사랑’으로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려는 작가의 시도는 「뫼비우스의 띠」에서 나오는 선생의 두 번째 답에서 드러난다. 그 두 번째 답은 굴뚝을 같이 청소했는데 한 아이는 깨끗하고 나머지 아이는 새까맣게 되는 일은 발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첫 번째 답과는 달리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이 답은 무엇을 의미하는 가? 첫 번째 답에서는 두 아이의 얼굴 상태가 다르다는 존재의 비대칭성이 전제에 해당하고 이로부터 자신과는 비대칭적인, 즉 대립적인 ‘타자’를 인식의 출발점으로 삼는 데에서 현실에 대한 왜곡, 대립과 갈등이 발생한다. 이와는 달리 두 번째 답은 첫 번째 답이 전제로 삼는 비대칭성을 전복(顚覆)시키고 존재의 ‘합일성’을 회복한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립 쌍에 해당하는 노동자와 자본가로 구별되기 이전에 ‘인간’이란 존재성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노동자’와 ‘자본가’로 편이 갈라져 대립하고 갈등을 일으키는 비대칭적 상황보다는 우리 모두가 노동자이기 전에, 혹은 자본가이기 전에 ‘인간’이라는 존재로 공유하는 통일적이고 합일적인 상황이 선행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노동자든 자본가든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인간에 대한 사랑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난·쏘·공』의 작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억압받고 소외받는 철거민, 노동자의 현실을 폭로하는 것만으로 사회를 변혁해낼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품었다고 생각한다.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에서 자본가로 대표되는 경호의 관점에 의해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팍팍해질 수밖에 없는 자본가의 삶을 목도한다. 자본가도 매일매일 “계획하고, 결정하고, 지시하고, 확인할 게 수도 없이 많”으며 “남다른 노력과 자본・경영・경쟁・독점을 통해 누리며 생존”을 근근이 이어가기 때문이다. 이렇듯 ― 비록 노동자보다 더 많은 경제적 이익과 권력을 취한다고 해도 ― 자본가의 삶도 굴뚝 청소를 한 두 아이의 얼굴 상태가 다를 수 없듯이 노동자의 삶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팍팍해지고 말라 비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작가가 보기엔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고 억압하는 현실보다도 모든 인간에게 노동자와 자본가라는 비대칭적인 상황을 만들어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는, 사랑이 존재할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야말로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난장이들이 겪는 억압적 상황뿐만 아니라 모든 대립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사실, 우리가 사랑을 느끼고 실천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데에 희망을 걸어본 것이다.
그렇다면 『난·쏘·공』이란 작품은 이미 필자가 언급한 “‘뫼비우스의 띠’같은 존재인 우리는 필연적으로 20대 우리들의 모습을 부정할 수밖에 없고, 결국 자기 자신을 변혁시키는 일은 불가능한가?”라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난·쏘·공』은 20대의 우리들이 반복해 겪었던 자기부정과 자기배반을 인정한다. 그렇지만 그 자기부정 행위는 우리들 스스로가 저지른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자본주의 사회는 이미 근본적으로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이라는 비대칭적 속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이쪽 편에 설지 저쪽 편에 설지를 우리들에게 강요하고 결국 우리네의 삶이 결국 비대칭적인 삶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거리 시위를 다니고 구호를 외쳤던 예전의 우리와 이제 먹고 살 문제로 고시, 취업, 대학원, 로스쿨을 기웃거리는 지금 우리의 과거와 현재의 삶은 비대칭적으로 ‘의도’되는 것이다. 똑같이 굴뚝청소를 하고도 한 아이의 얼굴은 새카맣고 다른 아이의 얼굴은 깨끗한 것처럼, 자본주의는 과거의 나도 현재의 나도 똑같은 ‘나’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은 두 개의 모습으로 분열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쏘·공』은 우리네 삶의 비대칭성에 실망하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그 시절 그 때의 ‘사랑’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가 노동자와 자본가를 대립시키고 우리 자신들 내부조차 분열시킨다고 해도, 우리는 ‘인간’이기에 사랑의 따뜻함과 사랑의 순수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우상이었던 그분이 어떤 직업을 선택하든 인간에 대한 사랑을 언제나 느낄 수 있는 인간이니까, 고시에 합격한 다른 선배는 아직도 지갑 속에 레닌 사진을 품고 다니며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으니까, 아직 그들과 우리의 삶은 죽은 게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우리들을 분열시키고 이쪽 편과 저쪽 편으로 갈라놓는다면 우리는, ‘뫼비우스의 띠’같은 존재로서 ‘사랑’을 무기로 삼아 자본주의에 대항할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것처럼 우리는 이쪽 편에 설지 저쪽 편에 설지 결정하지(혹은 되지) 않으며 그것으로 우리의 행동과 삶에 제약을 가하지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가 원하는 대립과 갈등, 존재의 분열을 강력히 거부하여 겉과 속이 구별되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가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기회를 엿보며 마음 속으로는 이 괴물덩어리 같은 사회의 숨통을 끊을 수 있는 ‘사랑의 칼’을 조용히 갈고 있을테다.
4. 서른, 잔치는 끝나지 않았다.
여기까지 글을 써놓고 나니 부끄럽고 창피하다. 글솜씨의 어설픔은 둘째로 치더라도 전혀 보이지도 않는 ‘사랑’으로 20대의 우리들이 저지른 자기배반을 옹호한 죄가 큰 탓임이 분명하다. ‘사랑’의 감정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지갑 속에만 ‘레닌’의 사진을 품고 있다고 해서 우리들의 삶이 자본주의 사회에 대항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또한 우리의 삶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억압적 권력들이 실상 ‘사랑’이란 감정으로 쉽게 파괴될 성질의 것이 아님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글을 통해서 ‘사랑’을 내세워 우리의 짐을 덜려고 했던 건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난·쏘·공』의 ‘난장이’가 꿈꾸는 세상을 믿고 싶었다. 난장이는 “사랑에 기대를 걸었”고 난장이가 꿈꾼 “세상에서 강요되는 것은 사랑”이었다. 사랑이 원칙이 되는 세상에서 “지배계층은 인간이 갖는 고통에 대해 그들도 알 권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균열을 일으키기 위해서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국가를 장악할 수 있는 강력한 정치권력이나 한국사회에 대한 경제적 분석보다도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내 마음 속에 있는, 내가 겪었던 ‘사랑’을 잊지 않고 소중히 간직한다면 내가 30대이건, 40대이건, 그 ‘사랑’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언젠가 찾아왔을 때 그때는 정말로 과감히 실행에 옮길 수 있지 않을까.
다만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랑의 무게가 너무 가벼워져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우리 마음 안에만 갇혀버리는 상황이다. 너무나 쉽게 타인을 말하고 너무나 쉽게 공감한다고 말한다면 우리의 사랑도 점점 힘을 잃어가는 게 아닐까. 그런 사랑은 어차피 잊혀지기 마련이고 현실의 그 어떤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죽은 사랑’이며 ‘자위행위’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 스스로가 좀 더 진실한 사랑을 하고 사랑을 무겁게 여긴다면, ‘사랑’을 무기로 삼아 노동자와 자본가로 편을 가르고 철거민을 구렁텅이로 몰아내는 이 괴물 덩어리 같은 사회에 대항할 수 있지 않을까.
『난·쏘·공』을 읽고 난 후 글을 쓰면서 자기 배반의 모습들에 고통스러워하고 아파는 20대의 우리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한때 이 괴물덩어리 같은 사회를 인간다운 사회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으로 만들고 싶었던 누군가가 고시의 길을 간다고 해서, 혹은 로스쿨의 길을 간다고 해서, 대기업에 취직한다고 해서 자기 자신을 배반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꼭 ‘활동가’라는 직업을 택하는 것만이 자기 자신을 배반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고시에 합격하고, 대기업에 취직하면 ‘사랑’하지 못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전략에 빠지는 것이다. 이쪽 편, 저쪽 편으로 나누고 자기 자신조차도 분열시키는 자본주의 사회의 고도의 전략. 우리는 이 전략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우리가 언제나 ‘사랑’할 수만 있다면, 우린 언제 어디서나 ‘사랑’을 무기로 괴물 덩어리 사회에 대항할 수 있다.
어디선가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시를 읽은 적이 있다. 그 시는 서로를 찬란히 사랑하고 투쟁했던 20대가 지나가고 시간이 흘러 우리가 ‘서른 살’이 되면 ‘사랑의 잔치’는 끝나게 된다는 다소 패배주의적인 내용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떻게 20대만이 ‘잔치’를 벌릴 수 있는 세대이며, 어떻게 20대만이 청춘(靑春)을 독점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직업을 선택하고 30대, 40대, 50대가 되어서도 우린 언제나 ‘사랑’을 무기로 얼마든지 사회에 대항하는 ‘사랑의 잔치’를 벌일 수 있고 항상 ‘청춘’일 수 있다.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곳은 많으며 언제 어느 때라도 우리의 ‘사랑’이 필요할 것이다. 미안하지만, 서른, 잔치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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