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래, 『전태일평전』
학부생부문 다른 서평들
조영래, 『전태일평전』
통합과학연구회 박동렬
2009년 10월 24일, 위화감을 느끼다.
군화발의 시대는 끝났다한다
폭력의 시대도 끝났다한다
시대에 역행하는 투쟁의 깃발은 이제 내리라한다
허나 어쩌랴 이토록 생기발랄하고 화려한 이 땅에서
아직 못 다한 반란이 가슴에 남아 자꾸 불거지는 것을
(…)
- 정윤경, 〈시대〉
지난 10월 24일에는 전국 비정규직 대회가 있었다. 정말 지겹도록 오랫동안 싸운 비정규직노동자들에게 다시 싸울 힘을 주기 위해서. 특수고용, 파견, 시간제 등 이름은 다. 다르지만 그/녀들은 이 사회에서 안정을 찾지 못한다는 것 하나는 같다. 어떤 이는 ‘1회용품’이라고 부를 정도로 잘리기 쉬운, 그리고 안 잘리기 위해서는 고된 노동을 감수해야 하는 이들이다. 이미 한국 노동자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그 투쟁을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그 눈물을 조금이나마 닦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리고, 그 중 시간이 되는 친구 한명과 거기에 갔다.
집회가 진행되었다. 발언과 공연들이 이어지고, 사이사이에 구호를 외쳤다. ‘모든 노동자에 게 노동3권 인정하라!’, ‘강제 추방 중단하고 노동비자 발급하라’, ‘인간답게 살고 싶다. 비정규직 철폐하라’ 등 수많은 구호가 외쳐졌다. 발언들도 그런 내용이었다. 사람답게 살기위해 필 요한 권리들을 외치는 목소리들이 들렸다. 힘찬 목소리였지만 어쩐지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 자주 들리는 구호에 위화감을 느꼈다.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3권 인정하라!’ 라고? 불현듯 ‘전태일 평전’이 떠올랐다. 대학에 들어와서 읽은 책 중 가장 인상이 깊은 책이었다. 그 책에도 같은 내용은 나왔던 것 같은데…. 책 내용을 떠올려봤으나 정말 그 구호가 나왔는지는 잘 떠오르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씻기도 전에 책장을 뒤졌다. 그래 작년에 읽었었지. 여기 있구나. 책을 펼쳐들고 휙휙 넘겼다. 그 때의 구호, 전태일이 몸을 불사를 때의 구호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였다. 다르긴 다른데 그렇게 많이 다르지는 않은 그런 구호.
뭐, 어찌됐든 다시 읽어볼까? 그렇게 1년 만에 그 책을 다시 손에 쥐고 읽게 되었다.
10월 24일 PM.10 다시 책을 읽어보다.
(…)
어쩌면 반지의 무게와 총칼의 질타에 구애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않기를 바라는,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내 생이 다. 못 굴린 덩이를,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 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
전태일, <소설 초안에 나온 주인공의 유서> 중
전태일 평전(이하 평전)은 70년 11월, 자신의 몸을 불태우며 노동자의 권리를 외쳤던 전태일을 생애와 사상을 담은 책이다. 83년 초판이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나왔을 때 즉각 ‘시판 중지 종용’, 즉 판매 금지를 당했으며 작가인 조영래 변호사는 결국 평전에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전태일 평전”의 ‘개정판을 내면서’에 나와 있다.
전태일의 어린 시절은 그냥 ‘불운’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수많은 역경들이 존재했다. 평소에 는 성실하면서도 일이 좀 틀어지면 폭음과 폭력을 일삼는 이중적인 아버지, 4.19 즈음에 사기를 친 사기꾼, 그 외 자신을 ‘부(富)한 환경’에서 쫓아내는 여러 가지 일들.
전태일은 애써 취직을 했다. 조영래 변호사의 표현에 따르자면 ‘마음잡고’(99p) ‘형무소냐 노동지옥이냐 이 두 가지 중’(100p)의 하나를 선택한 셈이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눈에 계속 밟히는 일은 있다. 평화시장의 노동자들이 너무나 가혹한 삶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곳은 역시 노동지옥이었다. 그 처지를 조금이나마 개선하기 위해 재단사가 되어 보지만 그것마저도 공장주에게 미움을 사서 쫒겨나고 만다.
전태일은 그즈음에서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게 된다. 너무나 당당하게 현실과 어긋나 있는 근로기준법을 알게 된 전태일은 거기에 분노하고 근로기준법을 지켜지게 하기 위해 ‘바보회’를 조직한다. 하지만 바보회 활동을 하며 전태일은 공장주들에게 완전히 찍혀 버렸고, 바보회도 곧 해체되고 만다. 그 후 몇 개월간 막노동을 하거나 잡역부로 일하며 모종의 결심을 하게 된다.
산을 내려온 전태일은 삼동친목회로 이름을 바꾸어서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다시 근로 실태를 조사하고 노동청에 청원하는 등의 일을 진행했으나 세상은 그가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엔 크게 변하지 않았다. 결국 데모를 하기로 결심했으나 경찰의 방해로 번번이 무산되고 결국 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할 때 분신자살하고 만다.
영웅적 투쟁… 그러나 전태일도 영웅이 아니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새삼 많은 감동을 받았다. 정말 뜨겁게 그 시대의 아픔을 대변하는 사람은 결코 ‘개인’으로 치부할 수 없기 때문에 전태일로 하여금 그 시대를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글쓴이의 격정적인 표현은 그의 전태일에 대한 큰 사랑과 슬픔을 담아내고 또한 전태일의 삶을 실감나게 전해 주었다.
하지만 약간 아쉬운 점이 있다. 전태일이 살았던 시대의 시대 상황이 조금 더 자세히 분석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점이다. 물론 이 책은 전태일 평전이고, 그렇기 때문에 전태일의 개인사 위주로 쓸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개인사 안에서 어떻게 한 사람이 노동운동에 투신하고 죽음까지 이르게 했는지를 보는 것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고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감동을 자아낸다.
그렇기 때문에 전태일 평전의 한계로 평전이라는 형식을 들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바를 모두 다했다. 하지만 전태일은 개인이 아니라 한 시대를 지칭하는 이름이고, 한 운동을 표현하는 이름이기 때문에 나머지 부분을 채워 넣어야 한다. 평전에서 자세히 다룰 수 없는 당시 시대상황, 어떤 요인이 전태일이라는 인간을 만들어 냈고, 그 이후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는 자료가 필요하다.
전태일이 살았던 그 시대. 1960년대
압축적으로 서술하자면 1960년대는 외국의 차관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국가가 주도하는 강력한 발전주의 전략으로 세계 자본주의 제계에 대한 종속이 심해지고 독점자본이 성장했던 시기였다. 군부정권은 발전에 대한 전망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며 민중들을 포섭했고, 강력한 반공주의로 민중의 투쟁을 무력화시켰다. 지배계급의 공세는 이토록 강력했는데 비해 변혁세력의 이념과 역량이라고 할 만한 것은 너무나 없었다. 그러한 가운데 1960년대 말이 되면 일련의 위기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68년 말 외자기업 중 55개사가 은행관리로 넘어가고, 69년에는 10개사가 상환을 이행하지 못하게 된다. 이것은 주로 군부에서 많은 지원을 쏟아부었던 수입대체 중화학부문에서 발생했다. 많은 자본들이 차관도입을 둘러싸고 무분별하게 경쟁했기 때문에 과잉생산현상을 보인 것이다. 게다가 계속해서 출혈수출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차관에 대한 상환압박은 국제수지 위기로 나타난다. 70년대로 넘어오게 되면 미국의 헤게모니가 흔들리기 시작하며, 한국에서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조건들이 점차 사라져간다. 이렇게 경제위기가 나타나는 가운데 전태일의 삶이 있었던 것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발전주의 비판에서 신자유주의 비판으로』, 『청년을 위한 한국 현대사』,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자본주의 경제 산책』 등을 참조하면 된다. 서평이라는 성격상 최대한 압축적으로 서술하였다.)
전태일의 혹독했던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 그가 겪었던 고통과 고뇌들 부조리들도 이런 맥락 안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가 흔들릴수록 고통은 민중들에게 전가되기 마련이다. 경제성장을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 지배계급은 계속 이야기하고 무력으로 위협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겪지 못하는 민중들에게 그 기만은 너무나 속살을 잘 드러낸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사적인 특징을 뒤로 두더라도 올 4월 30일 돌아가신 화물연대의 박종태 열사의 유서에서 나온바와 같이 전태일도 그 시대를 살았던 평범한 사람이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또 다른 평범한 사람들에게 그의 온기가 전해졌고, 그 온기가 계속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내용들을 포괄하지 못한다면 이 책의 의의는 매우 적어지게 된다. 역사를 이해하기 힘들어진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영웅이 아니라 옆집 아주머니, 앞집 할아버지, 나, 너, 내 친구 아무개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인 말이지만 전태일에 집중한 나머지 전태일을 이해하기 힘들어졌고 그것이 아쉽다.
21세기에도 전태일은 있다
게다가 이제 세월이 많이 지나갔다. 강산이 족히 네 번은 바뀌었을 것이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민주노조운동이 벌어졌고, 진보정당 운동도 벌어졌다. 수많은 이들이 투쟁해서 87 년을 기점으로 정말 거대한 운동이 탄생하는가 했다. 그리고 2009년 지금은 어떠한가?
97년에는 속칭 비정규직, 파견법이 통과되고 노동탄압은 거세어졌다. 쌍용자동차의 점거투쟁은 조금은 외로웠으며 10년도에는 최저임금이 삭감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열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보통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 흐름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외관상으로 볼 때 그때로 돌아간 것만 같다. 하지만 분명히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지금 다른 자료를 보충해 가면서까지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평전은 아직도 현재적이기 때문이다. 전태일이 60~70년대를 상징하는 이름이라면 지금도 수많은 전태일들이 있다. 박종태 열사가 그렇고 기륭 노동자들이 그렇고 쌍용자 노동자들이 그렇다. (개인적으로 ‘좌파’라는 단어는 이런 분들에게 바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르크스&엥겔스를 모르고 레닌을 모르지만, 그 시대에 가장 계급투쟁이 격렬한 곳,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핵심에서 싸우는 사람들, 그저 평범한 사람들인 이들에게 ‘좌파’ 이외에 어떤 호칭을 붙일 수 있을까.)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이다. 나는 이 사람들에게서 전태일을 느낀다.
평전을 읽으면서 벅찬 감동을 다시 느꼈다. 평전을 읽으면서 전혀 달라지지 않은 현실에 놀라고, 또 다른 전태일들을 보면서 감동했다. 사회변혁을 꿈꾸는 이 땅의 활동가들에게 이 책을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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